[인터뷰]이재윤 대표
2007-02-01 한국섬유신문
패션 액세서리 소품
“우리가 만들면 대박”
“다들 못한다고 했습니다.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외국에서 수입만 해왔지 한번도 만들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못한다는 거예요. 제가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션 액세서리·소품 기획 디자인 업체 엠디카페 이재윤 대표(38)는 국내 최초로 패션 액세서리 소품 제작 분야에 뛰어든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90년대 중반 수입 목재 인테리어업체에서 MD로 일하고 있던 이 대표는 트래드클럽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사은품으로 줄 소품 액세서리 제작을 의뢰 받고 제작업체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국내에서 제작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첫 번째 작품은 골프 오브제가 가미된 앤틱한 시계. 친구인 쌈지 백희 디자인 실장에게 문의해 보았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너무 좋아들 한다는 대답이었다. 대답이 그렇게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용기를 내서 직접 만들어 보았는데 친구의 말대로 반응이 너무 좋았다.
때마침 런칭하는 신규 브랜드가 있었고 20가지를 기획해서 제안서를 넣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핸드폰 케이스, 비누, ‘오지세컨’ 사은품도 만들었다. 제작 라인이 없는 수입회사에서 제작까지 하려니깐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독립해서 직접 제작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 액세서리·소품 전문 기획 디자인 회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때가 97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8년을 한길만을 고집하며 패션업계에선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 대표도 계속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었다. 독립하고 얼마 되지 않아 IMF가 터지고 경기가 침체되자 주문량이 뚝 떨어졌다. 대금 회수도 어려워졌다.
이 대표는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며 잘라 말한 뒤 “요즘 패션샵의 트랜드가 멀티샵으로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만큼 컨택이 많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사업운도 많이 따랐다. 흔히 말하는 대박을 평생 한번도 내기 어려운데 이 대표는 수시로 내고 있다. LG 홈쇼핑에서 설윤형 장광효 진태옥 등 SFAA 소속 디자이너 7명이 작품을 판매할 때 가방을 비롯한 액세서리를 디자인 했는데 대박이 났다.
CJ 홈쇼핑으로부터 구두의 포장박스 구겨짐과 파손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디어의 전환이 필요했다. 박스는 왜 종이 패키지만 써야 하지? 고심 끝에 이 대표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아예 박스를 없애버리는 거였다. 상품을 사면 의례히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사은품을 없애는 대신 조금 더 투자해서 카메라 가방과 같은 고급 가방을 만들어주면 반품률도 줄고 고객들도 좋아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반품률이 월등히 줄었을 뿐 아니라 판매에서도 대박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대형 홈쇼핑업체들로부터 앞 다투어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엠디카페는 월 평균 20여개 업체에서 100여개 품목에 걸쳐 디자인 의뢰가 들어온다. 지난 1월에 채택된 디자인만 해도 76가지. 캔슬된 것까지 포함하면 200여 가지가 넘는다. 6명의 직원이 회사와 공장을 번갈아 가며 밤낮없이 뛰어 일궈낸 결과다.
이 대표는 “신생브랜드 업체의 의뢰를 받아 직원들과 잠도 못 자가며 기획해서 디자인을 제공하면 그때부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다가 어느 순간 연락을 딱 끊어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면 우리가 기획한 상품이 그대로 매장에 깔려있다”며 “이 같은 행위는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하루 속히 근절돼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엠디카페의 영역은 패션 액세서리·소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테리어 소품, 음반 패키지 상품, 영화의 머천다이징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대표는 오는 3월 말 서울 인사동에 단독 매장을 개장하는 것을 비롯해 올해 안으로 서울에 3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다.
이 대표는 “메종 오브제와 같은 세계적인 소품 잡화 전시회에 단순히 구경 가는 것이 아니라 패션 선진국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함께 참여하고 싶다”며 “20년 정도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후 학교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후학을 양성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