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최경자 여사]
나의 사랑·나의 패션 80년
최경자 여사
미국 순회 패션쇼
자선쇼에서 교포위한 행사로 확대
美 의원부인들 자청해서 모델로
예상외 호평에 감격 바이어 주문도
한사람의 디자이너로서 나는 그동안 자신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패션쇼를 국내외에서 가졌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를 가장 크게 느낀 행사는 73년 10월 미국 워싱톤DC의 콩그레셔널 클럽에서 가진 쇼가 아닌가 싶다.
그 행사는 처음 조그마한 자선계획에서 시작됐다.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이며 우리나라 명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로즈 코웬 여사로부터 그녀가 돕고 있는 부산의 베들레햄 고아원을 위해 미국에 와서 자신쇼를 열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조촐한 선의에서 시작된 작은 계획이 준비 과정에서 듯밖에 큰 행사로 발전된 것
이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일보 로스엔젤레스 지사에서 이왕 미국에 와서 패션쇼를 한다면 우리것을 잘 모르는 교포들에게도 보여줘서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달라는 제의를 해 온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을 발표작 목록에 추가하는등 대대적인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영빈관에서 국내 인사들에게 출국 인사를 겸한 쇼를 가진 것이 그해 9월 29일 미국으로 재차 떠난 것은 10월 초였다.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일대의 교포들을 위한 쇼는 10월 13일 할리우드에서 열렸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과 대한 무역진흥공사 사장, 그리고 로스엔젤레스 무역관장 제씨를 위시하여 재미 교포사회의 유지 여러분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애초 코웬 여사가 목적했던 자선쇼는 워싱턴 DC의 콩그레셔널 클럽에서 열렸는데 이 건물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클래식한 건축불로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이 취임식때 입었던 뜻깊은 의상을 진열해 놓은 곳으로 유명했다.
패션쇼 당일에는 3백여명의 미국 상류사회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는데 그 귀빈들을 아름다운 한복 차림의 우리나라 영사 부인들이 맞이 하고 안내하는 수고를 해주었다.
홀정면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고 테이블 마다 우리나라 민속 인형들이 장식된 가운데 울려퍼진 성악과 레이먼드 하진씨(양유걸 전대사 동서)의 힘찬 양국 국가 독창은 너무나 감동적이였다.
더욱이 이날 발표된 의상들은 9명의 미국 국회의원 부인들이 자청하여 모델이 되어 소개됐다.
50여개점의 의상이 하나 하나 소개될때마다 보내지는 박수는 찬사를 그칠줄 몰랐고, 쇼가 끝나자 귀반들은 자진해서 방명록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이 행사로 해서 처음에 뜻한대로 고아원을 도울 많은 성금이 모아졌을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의상발표를 통해 국위선양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에 코웬여사는 물론, 행사를 주관한 미국 국회의원 부인들에게 크나큰 감사를 느꼈다.
미국 순회 패션쇼의 마지막 예정지는 패션 교육의 명문인 뉴욕 FIT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시킨 곳인 만큼 성과에 대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쇼가 끝나자 예상을 넘는 호평과 함께 바이어들의 주문이 밀어닥쳐 놀라웠다.
바이어들은 서로 다투어 가며 값을 올리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자고 서둘렀다.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수출 제의를 받고 그만큼 우리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게 된것에 기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당장 샘플을 보내달라는 그들의 대량 주문에 응할 수 없는 현실여건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서 확답을 하겠다고 일단 미루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미국인과 재미 교포들에게 우리의 복장 문화를 소개하는 소임외에 의상수출의 밝은 전망을 확인케 했다는 보람 또한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