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남기고 싶은 이야기들[국제패션진흥원 최경자 여사]
나의 사랑·나의 패션 80년
국제패션진흥원 최경자 여사
미국 국제 가정학회 참석
외국 패션 흐름 직접볼 절호의 기회
서양 여성들의 검소한 옷차림에 놀라
국내 양장계도 60년대 들어 급성장
양장계에 안정과 성장의 기틀이 마련되자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안목을 키울 수 있는 해외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양장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본격적인 패션의 흐름을 직접 내눈으로 보고 배워
오고 싶었다.
때마침 회원으로 있던 대한 가정학회(당시 회장 최이순)로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가정학회 총회에 한국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지금과는 달리 해외여행의 기회가 극히 드물던 당시 필자에게는 정말 바라마지 않던 반가운 제의요 행운의 기회였다.
그래서 4.19직후인 1960년 6월 같은 가정학회 회원이며 교직에 있던 이정원, 이정자, 이동혜선생들과 넷이 일행이 되어 김포공항을 떠났다.
처녀시절 일본에서 공부를 했으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두 번째 해외 여행이 되겠지만,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구미 여행길에 오른 기분은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설레었다.
미국으로 가는 도중 하와이에 기착했을때 느낀 첫인상은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수없이 외국 나들이를 했어도, 지금까지 그 기억에 생생하다.
하외이의 경치가 퍽 아름답다는 소리는 서울에서도 익히 들었었지만 우리 선조들이 즐겨쓰던 ‘풍경’이란 말의 참뜻을 깨달은 것도 그때다.
열대 식물의 크고 넓은 입사귀나 형형 색색의 꽃들이 미풍에 날려 하늘거리고 출렁이는 모습은 정말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하는 장관이었다.
국제 가정학회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의 힐튼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세계 각국의 가정학회 회원이 한자리에 모여 1주일간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의 합리화를 주제로 토의를 하는 한편 생산시설을 견학하는등 꽉짜인 스케쥴속에 진행되었다.
나는 바쁜 일정중에서도 디자이너란 직업의식때문인지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물론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 사람들의 옷차림에 유난히 관심이 쓰였다.
서양 여성들의 의생활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검소하다는 소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눈으로 보고 느낀 그들의 의생활은 단순히 검소하다기 보다는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총회에 참석한 유럽의 대표들이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씩 옷을 갈아입는 것이 우리 한국대표들의 눈에는 매우 이상스레 비쳤다.
우리네 관습으로는 한가지 옷을 몇일씩 계속 입는 것이 극히 당연하고 옷을 자주 바꿔입으면 사치스럽거나 경박하다고 비난을 받는 형편이 아닌가.
그런데 서양 여성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만날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어서 매번 새로운 느낌과 청결한 기분을 갖게 해주었다.
물론, 그 옷들이 결코 값비싼것은 아니였다.
값싸고 실용적인 옷감으로 입기 편하게 디자인된 몇벌의 옷들을 때와 장소에 맞춰 센스있게 바꿔 입을 뿐이였다.
이런 사실은 귀국할때까지 패션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것은 다 젖혀 놓더라도 때와 장소에 알맞은 옷차림에 대한 인식을 깨우쳐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머릿속에 맴돌았으며, 내가 처음 방문한 해외여행, 또는 국제 가정학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로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