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2007-12-07     한국섬유신문

나의 사랑·나의 패션 80년
국제패션진흥원 최경자 여사

국제복장학원 이전

남산초등학교 앞골목에 7층 건물 신축
함흥양재학원 개원일 맞춰 전격 이전
‘30년전 입학금 그대로 받자’ 이색광고 화제

69년으로 해가 바뀌기 바로 한달전 국제복장학원을 이전했다.
61년 3월 개원해서 그때가지 세로 들어 있던 계성여고앞 전 조폐공사 건물은 해가 바뀔수록 집세가 자꾸 올랐다.
영리사업이 아닌 학원 경영으로는 감당하기 벅차진 나는 학원을 옮겨갈 마땅한 건물을 물

색하기 시작했다.
퇴계로 남산 초등학교 앞골목에 있는 건물로 겨우 2층까지 짓다만 꼴에 골목은 너저분하게 쓰레기가 쌓여 있는등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당장 가진 돈으로는 더 나은 것을 구하기도 어려워 그 건물을 구입했다.


연평균 5백여평의 새집을 무리를 해가며 7층까지 지어올리고 이사를 한것이 그해 12월.
1백여명의 학생들이 비좁은 교실에서 붐비던 먼저와는 달리 널찍한 교실마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게 되자 교육 효과도 한층 높아졌다.
계성여고 앞에서 지낼 때에는 큰방이 없어서 학원생 전체가 모여 행사를 치를때마다 커다란 강당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었기 때문에 새 건물의 7층은 전혀 칸막이를 하지 않고 그대로 터서 강당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회 저명인사를 초빙해 교양강좌를 열거나 교내 작품 발표회 혹은 연말마다 갖는 불우 이웃돕기 자선 바자회 장소로 썼다.
그리고 교실도 더러 빈방이 있어서 꽃꽂이 전문가를 모셔다가 매주 꽃꽂이 강습회를 갖는 등 그때까지 교실 형편상 양재 교육에만 치중하던 시야를 한층 넓혀 좀더 교육다운 교육을 해보려 여러 가지 계획들을 마련해 보기도 했었다.
학생들도 제대로 갖추어진 시설 속에서 공부하게 되자 수업태도도 한층 진지해져서 대견스러웠다.
이처럼 새 건물로 옮겨와서 첫 입학생을 모집하던 69년 초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획실장으로서 학원운영을 돕고 있던 신현우가 신입생 모집에 색다른 광고를 해보자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국제복장학원은 전신인 함흥양재학원(38년 개원)의 개원일인 3월 3일 창립기념일로 지켜왔는데 개원 30주년 기념행사로 69년 3월 3일에 입학하는 학생에 한해서는 30년전의 입학금을 그대로 받자는 것이였다.
나는 이 아이디어가 매우 기발하고 재미있다고 생각되어 찬성했다.
그래서 3월 3일 입학자에 한해 30년전 개원당시 입학금 1원 50전을 받습니다“라는 색다른 광고가 신문가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놀라워 그 광고 덕분에 몇일사이에 학원생이 두배로 늘어나는 이변이 일어났다.
주변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칭찬이 대단해서 이 광고는 그후 창립 기념일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후 입학금제도가 없어지면서 이 광고도 자연히 사라졌다.
새로 학원을 짓고 이사하는등 큰일을 치르는 동안 몸에 무리가 갔던지 69년 여름 나는 난생처음 20여일간 입원생활에 들어갔다.
퇴원한 뒤에도 학원 강의조차 못하고 쉴만큼 건강이 나빠졌는데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이 날라왔다.


재미 한국 디자이너협회가 나를 고문으로 추대하면서 총회 참석차 초청한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미국 패션계와 디자인 스쿨 현황을 살펴보는 동안 나의 건강은 깨끗이 회복되었고, 귀국하자마자 나는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