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 53년 디자이너의 길 고시노 히로코

2010-09-03     한국섬유신문

동양적인 모티브에 서양 모더니즘 접목
끊임없이 추구해 온
에스닉 스타일 창조

철저한 마케팅 추구는 디자이너의 기본
연 매출 5000억원 그녀 자체가 곧 기업
기업이 디자이너 지원 앞장서줘야
글로벌 한국디자이너 탄생 앞당겨


“옷은 사람에게 입히기 위해 만든다. 디자이너 제품이라고 이와 다를 게 없다. 이는 디자이너가 철저하게 마케팅을 추구해야 하는 근본이유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넉넉한 포용력이 돋보이는 마음이 큰 여자 고시노 히로코(72). 그녀는 일본 패션계가 자랑하는 2세대 글로벌 패션디자이너 선두주자다.
그녀가 18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일본 문화본장학원 동창 모임 스미레회 한국지부를 찾아서였다. 한국 내 일본 문화복장학원 출신 동문은 약 4000명에 이른다. 때마침 스미레회 한국 회장을 맡고 있는 오영석 씨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김치 브랜드 ‘처가댁’ 사옥 준공식과도 맞물렸다.
고시노 히로코와의 인터뷰는 지난 달 17일 서울 프리마 호텔에서 열린 (주)영명빌딩 사옥 준공식 행사를 앞두고 진행됐다.
-53년 동안 추구해온 디자이너의 길은.
“아시아인으로써 동양을 아끼고 자긍심을 높이는데 애써 왔다. 한마디로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양적인 모티브 즉 색상과 문양에 서양의 모더니즘을 접목하는 에스닉 스타일 창조였다. 오트쿠튀르(맞춤복)로 시작해 프레타포르테(기성복) 길을 걷는 동안 히로코 고시노만의 ‘Jan style’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주력해왔다.”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디딜 때 어려움은 없었나.
“82년부터 매 시즌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섰다. 80년대 초반 파리 컬렉션 문을 두드렸을 때 이미 겐죠, 이세이 미야케, 가와구보 레이, 야마모토 요지 등 일본인 디자이너들의 왕성한 활동 덕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또 프랑스 사람들은 동양을 좋아했다. 이 모두 고시노 히로코가 디자이너의 길을 가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많은 아시아의 후배들이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힘을 합쳐 아시아의 파워를 보여야 한다. 또 트렌드만 쫓지 말고 팔 수 있는 즉 비즈니스가 되는 상품을 만들어라. 옷은 전시효과로 끝나서는 안된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디자이너로써 자신감이 생긴다.”
-한국 디자이너들과의 교류는.
“1987년 하이야트 호텔에서 컬렉션을 가진바 있다. 이 때 SFAA소속 디자이너들을 알게됐다. 진태옥, 박윤수, 한혜자, 박항치, 故 김선자 씨 등이다. 또 이들이 오사카에서 전시전을 가질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디자이너 길을 가는데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든다면.
“일본은 기업들이 앞장서 디자이너와 스폰서쉽 관계를 맺는다. 나도 일본의 5대 그룹의 하나인 이또킹 그룹과 스폰서쉽을 맺었다. 그리고 이또킹과는 지금까지 스폰서쉽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도 대기업이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본 기업인의 의식수준만큼 높아져야 한다. 디자이너가 지닌 유무형적인 창조능력을 기업이 일깨워줘야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올해 72세다. 아직도 디자이너로써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품 활동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를 이끌어나갈 수석디자이너는 누구인가.
“후계자는 나의 딸 고시노 유마다. 그 역시 이또킹 그룹과 스폰서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브랜드를 전개 하고 있다. 아직은 나의 힘으로 이끌어나가는 중이다. 귀국과 동시에 도쿄컬렉션과 파리컬렉션 준비에 들어간다. 이 모두 스폰서쉽을 맺은 기업이 힘을 보탠다. 디자이너의 길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체력이 닿는 한 디자이너로써 열정을 불태우겠다는 일념뿐이다.”
고시노 히로코는 자기 이름을 딴 디자인 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바로 ‘고시노 히로코 디자인 하우스’다. 디자인하우스는 인력 45명이 현재 38개 아이템에 대한 라이센스를 관리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올리는 매출은 150억엔 정도다. 또 Jan style로 불리는 라인 즉 옷은 연 매출이 250억엔에 이른다. 그의 이름을 상품으로 삼아 올리는 매출은 연 약 400억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0억원 정도다. 한마디로 고시노 히로코는 움직이는 기업 그 자체다. 글로벌 디자이너가 창출하는 브랜드 가치는 이같이 높다. 바로 글로벌 한국디자이너의 탄생을 갈망하는 이유가 된다. /전상열 기자 syjeon@ayzau.com


She is
고시노 히로코는 1937년 1월 15일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59년 문화복장학원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 학원에 재학 중 일본 디자이너협회(NDK)가 주최한 디자인 콩쿨에 참가 1위를 하고, 이어 IWS상 마저 수상하면서 장차 디자이너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1961년 도쿄 긴자의 한 스토아에서 영레이디코너의 전속 디자이너길을 걷다 1966년 고향인 오사카에 오트쿠튀르 아트리에를 낸다. 1977년 T.D.6의 멤버가 된다. 이듬해 78년 일본인 최초로 로마 알타모다에 참가, 컬렉션을 발표한다. 그 해 하퍼즈 바자의 편집장에게 인정받고 국제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1982년부터 매 시즌마다 파리 컬렉션에 참가해왔다. 그녀는 의상을 통해 동양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마무리하는 등 일본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애써왔다. 기모노의 문양과 색상을 바탕으로 하되 유럽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현대적이며 범세계적인 표현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