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디자이너 한송 - ‘전통소재·천연염색’에 9년 투자 ‘독특한 미학’완성
 ‘한송 진’ 해외 유명 백화점 바이어가 호평 ‘세계화 시동’
패션산업 발전 기여할 ‘한국의 이세이미야케’ 주목
서양의 ‘진’을 ‘한지’로 차별화 글로벌 경쟁력 획득
‘디자이너 한송’과 마주하자면 맑고 깊은 우물속에 침잠해 미동도 않는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깊고 침착하고 맑고 지구력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2003년 파리에서의 오트쿠튀르쇼는 한송 디자이너가 평생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남겼다. 당시 유럽패션계는 ‘동양적인 것’ ‘친환경적인 것’에 관심이 높았으며 2002월드컵 주최국이었던 대한민국보다 일본을 ‘최고의 소재개발국’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한송은 그때부터 ‘소재’의 중요성을 깊게 각인하게 됐다. 그로부터 9년 동안 한국 전통소재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했고 ‘한지’와 ‘천연염색’을 통한 한송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관심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오는 8월 영국 해로즈 백화점에 한달간 작품을 전시하게 된 한송은 현지 디렉터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서양의 복식인 ‘진’을 한국전통소재 ‘한지’와 접목시켜 글로벌경쟁력을 획득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강한 지구력으로 한 우물을 파 온 한송은 “이세이미야케가 플리츠 소재로 일본 패션을 재조명하고 섬유산업을 발전시킨 것처럼 한국을 세계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고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조로 말했다.
지난 3월 말 서울컬렉션에서 한송 디자이너의 무대는 패션인들의 호평속에 많은 여운을 남겼다. 천연염색과 한지소재는 한송의 패션세계를 여느 디자이너들보다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너지효과를 줬다. 동양미를 글로벌한 시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형식적 평가 외에도 보는이들의 시야도, 워킹하는 모델도 편안하고 따뜻했다. 몸을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긴장감이 있었다.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보여준 한지에 천연염색, 독특한 디테일을 준 진즈웨어는 참관한 백화점 바이어들로 부터도 큰 관심을 이끌어 냈다.
“ ‘한송 진’이 아직 핫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고객이 입어보면 판매적중률은 95%가 넘는다”고 자부했다. 이는 곧 매니아층이 탄탄해 질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 ‘한송 진’을 하나의 브랜드로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지속 성장해 나갈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은 전 세계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굉장히 접근이 용이한데다 ‘한지’와 ‘천연염색’ ‘디자인력’까지 갖춰지면 승부가 가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한송 진’의 경우는 버튼도 한국의 전통우산을 위에서 내려다 봤을때의 모양으로 별도 제작했고 힙과 무릎의 디테일과 핏까지 디자인성을 부여했다. ‘한지’의 실용화와 기능성을 보다 강조해 활동하기 편안하게 스트레치성을 주었다.
“한지와 천연염색이야 말로 아토피를 예방하고 숨쉬는 피부를 유지해 주는 친환경, 웰빙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웃음) 색상, 아이템 하나하나를 만들어갈 때 하루아침에 안되는 부분이 많았고 시행착오도 있었어요. 또 초창기에는 한지의 상용화가 현실적으로 더디게 이뤄졌고 소비자 인식도 부족했죠. 갈수록 절대적으로 나아졌지만 9년이나 걸렸죠”소재개발에 대한 끈기를 높게 평가하는 기자 앞에서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겸손한 말로 응대했다.
“한국적인 것을 굳이 고집해서 ‘한지’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찾다보니 ‘한지’에 당도하게 된 것”이라며 결국은 “우리소재가 가장 친환경적이고 좋은 것”이란 말을 잊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양적인 것의 영감을 유럽에서 받았다는 한송은 “역사는 단지 ‘오래됐다’나 ‘고루한 것’으로 치부돼서는 안돼요. 저력있고 럭셔리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라고 새롭게 말을 이었다. 유럽의 명품이 100년을 넘어도 ‘새롭게’ 재조명되듯이 한국의 럭셔리 브랜드들에 대한 편견도 이와같이 새로운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송은 대한민국 1세대 디자이너인 ‘트로아 조’의 2세이다. 사실 본인은 1.5세대로 표현했다. 처음 패션계에 입문했을 때는 어머니의 명성으로 인해 자신에게 비춰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는 한송 디자이너는 그러나“어느 순간 제 자신이 정리가 되니까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해 졌다”고 홀가분하게 웃었다.
“저는 처음부터 오트쿠튀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고급 소재로 작품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것은 ‘트로아 조’의 저력이 뒷받침 돼 주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인정했다. “어머니께서는 옷을 하는 사람은 입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기쁨을 줄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 하면 다 되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죠. 항상 기억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많은 패션인들이 패션철학을 운운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감동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기본과 원론으로 돌아가 한송은 “아무리 소재가 좋다고 해도 우선 디자인이 훌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이 마음에 끌렸을 때 소재에 대한 장점을 설명하면 부가가치가 더 높아지지만 그 반대일 경우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송 디자이너는 현재 ‘트로아’ 브랜드의 전통을 중심으로 현대화와 트렌드에 발맞춘 변형으로 젊어진 모습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선’의 느낌만은 철저하게 반영하고 살린다. 오래된 브랜드의 장점은 ‘인프라’가 있다는 것이고 ‘트로아’만의 ‘선’은 강점이 되기 때문이다.
“저력이 있어야 새로운 것도 있는 것입니다. ‘한송’은 꼭 전통을 살린다? 아닙니다. 라인을 살리다 보니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지요.” 트로아를 맡은 지 3년이 됐다. 항상 연구하고 계승하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접목시켜야 하는 과제를 풀어가고 있다.
한송은 “물론 ‘트로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컬렉션도 잘하고 해외가서 홍보도 열심히 하고 국내 마케팅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 백화점에서도 럭셔리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는 오래전 홍콩패션위크에서 한송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끝난 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모델들이 벗어놓은 신발들이며 소품을 하나씩 챙기던  ‘트로아 조’선생의 위대한 모성이 오버랩 되면서 ‘한송’이 말하던 ‘저력’의 실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