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터치] 명유석 헴펠 대표 - “기회 그리고 변화”

2013-04-03     한국섬유신문

언제나 밀라노의 말펜사 공항에 내릴 때면 무언가 틀린 공기가 나를 감싼다. 누군가 독일 사람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이태리인들의 손재주라고 들었던 기억이 스친다. 패션이 국가를 먹여 살릴 만큼 중요한 나라, 현재는 국채와 복지의 문제로 도로는 깨끗하지 못하고 물가는 너무 많이 비싸졌지만 그래도 늘 깊은 웃음을 간직한 나라다.

늘 이탈리아의 소매, 도매 체계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와 다른 구조에 여러 사람이 상생하는 방식이 부러웠다. 병행 수입되는 고가 수입품 이른바 명품이 거의 본사가 아닌 지방의 작은 소매점에서 바잉 해 오는 시스템이다.

꽤 오래전부터 본사와 그 지역의 라이센스를 가진 소매점들은 시즌 바잉 한 본사의 물건들을 몇 %의 마진을 붙이고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모두 같이 나눠서 상생하고, 나아가 새로운 디자이너의 진입도 발 빠르게 시장에 도입될 수 있는 시스템이며 모두 선 주문 형태로 진행됨으로서 본사도 리스크를 줄이고 매 시즌 디자인에만 몰두할 수 있다.

지역 소매업자들의 수출은 수십 년 간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이태리인들의 문화적 감성을 볼 수 있는 형태다. 특히 부러운 것은 볼로냐의 도매시장이다. 그 대단한 규모에 놀라고, 그곳이 수출을 위한 면세 구역이라는 것과 어마어마한 창고 및 매장규모에서 또 다시 놀란다. 볼로냐 의류도매 시장은 내국인이 물건을 구입할 때와 외국인이 면세로 구입하는 가격이 틀리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가 수입품도 그곳에서 바잉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바이어가 형성되면 밀라노 컬렉션으로 옮겨서 그곳을 떠난다. 매번 갈 때마다 신규가 생기고 성공한 브랜드는 더 크게 성장해서 나간다. 물론 각 매장마다 국가별, 지역별 라이센스가 있어서 최소 수량을 넘기면 그 지역의 다른 매장에 물건을 보내지 않는다.

거의가 메이드 인 이태리지만 간혹 저가의 터키산도 있으며 최근에는 분명히 중국 냄새가 나는 제품도 있다. 들은 얘기지만 최근에는 도매시장 근처에 검은머리(중국인) 외국인들이 공장을 세우고 온 일가친척을 모아와서 작업을 하는 공장이 계속 생긴다고 한다.

요즘 중국 백화점을 가보면 한국 브랜드가 꽤 많이 입점돼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 보내는 옷도 있지만 대다수의 옷이 그 나라에서 생산된다. 물론 그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 지역 문화와의 어우러지는 현지화가 중요하니까.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백화점 입점 브랜드의 태반이 중국산이라 뭐라 딱히 할 말도 없다. 또한 중국에서 유통되는 그 수많은 한국옷의 대부분이 동대문을 통해서 나가기 때문에 아직도 중국, 홍콩, 대만 바이어들이 원하는 옷은 한국산이다.

열악한 환경과 고된 업무, 긴 노동시간으로 한국의 봉재 인력 연령대는 올라가고 신규 인력은 창출되지 못하는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으로 과연 몇 년 후까지 한국에서 의류를 생산할 수 있을까? 진정한 글로벌화는 무엇인가. 제조 생산을 모두 임금이 싼 외국에 의존하고 디자인과 아이디어만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떳떳한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만든 옷을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도매시장을 면세 구역에 두어서 전 아시아의 패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고가품부터 중저가까지 묶어서 외국 바이어들이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 생산단지를 자동화하는 한편, 나아가 외국인들의 연수를 받아들여서 진정한 장인들이 스승이 되고 연수생들을 배출시켜야 한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아직도 한류의 바람이 있고 봉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더불어 생각의 변화만이 또 다른 기회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