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영환 클라이머홀릭 대표 - ‘클라이머홀릭’ 아웃도어 마니아들 매료
‘믿음과 신뢰’ 입소문 타고 100호 점 달성
매년 60% 성장… 목표는 200호 개점
토종아웃도어 힘 과시 ‘글로벌화’ 박차
“28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약속, 믿음, 신뢰였습니다.” 조영환 클라이머홀릭 대표는 2008년 지인 4명으로 시작한 아웃도어 매장이 특별한 비용이나 마케팅 투자가 없어도 4년 후 100여 개로 늘어난 결과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냈다.
조 대표는 1985년 4월 좋은상사라는 작은 매장으로 첫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사업 시작 후 90년대 중반 레저 트렌드가 낚시쪽으로 몰릴 것을 예상했고 때마침 IMF(퇴직자 증가)가 터져 낚시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을 기록했다. 이후 동일하게 등산 인구가 늘어날 것을 예측, 2000대 초반 신세기 종합의류를 시작으로 의류사업을 본격화 했다.
하지만 당시로는 다소 시기가 빨랐고 서부 경남과 경기도 쪽에서 의류 도매업이나 동대문 납품을 우선 진행했다. 그러다 그 당시 중학교를 다니던 아들에게 “아빠가 등산복 브랜드를 하나 하려고 하는데 좋은 이름 있으면 하나 지어주겠냐”라고 부탁했고 아들은 ‘클라이머홀릭’이라는 참신하고도 근사한 브랜드명을 생각해냈다. 그것이 지금의 ‘클라이머홀릭’의 탄생배경이다.
2008년도 ‘클라이머홀릭’을 정식 상표등록 및 출원 하고 본격 브랜드사업을 준비했다. 그해 하반기 조 대표는 15억 원 가량의 물량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가까운 지인 4명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아웃도어 브랜드를 한번 하려고 합니다. 대리점을 하나씩 해주시겠습니까? 매장에 물량을 채우고 나서는 나머지 물량을 절대 시중에 뿌리지 않을테니 나를 믿고 한번 해봅시다.” 그 당시 4명의 동업자겸 대리점 초기 멤버는 조 대표의 말을 믿고 신뢰했으며 조 대표는 그 약속을 지켰다.
사실 준비 된 15억 원 가량의 물량에서 1억 원씩만 해도 매장을 채울 수 있었다. 나머지는 그냥 물류에 보관해뒀다. 이후 힘든 시기가 아무리 있어도 조 대표는 끝까지 그 약속을 지켰고 이듬해 4명의 지인은 주변 지인에게 매장 운영을 추천했다. 매장수는 2배가 됐다.
2010년에도 동일하게 입소문을 타며 40개로 늘었고 마치 거짓말처럼 2011년에는 80개점으로 증가했다. 조 대표는 거대 자본을 들이지도 않았다. 단지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처음 시작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정직하게 지킨 것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클라이머홀릭’은 겨우 30명 남짓의 직원에 연 매출 200억 원을 내다보는 규모지만 이런 신뢰와 믿음이 있기에 이 회사의 미래는 아주 희망적이다. ‘클라이머홀릭’은 2011년 까지는 전량 국내생산으로 전개하다가 매장이 늘고 물량이 많아져 지금은 베트남에 전용 공장을 계약하고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원단과 원부자재는 모두 ‘메이드인 코리아’로 탄탄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한번 구매한 고객들의 재구매율이 높고 여자 바지는 인기가 ‘짱’이다. 남성용은 조 대표가 일일히 큐씨를 보고 여성용은 정현미 전무의 꼼꼼한 손을 거친다. 물건 하나라도 허투루 나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한번 구매한 고객은 제품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조 대표는 “우리 옷을 한번 입은 고객, 소비자가 가장 잘 압니다. 옷은 입었을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다시 손이 잘 가지 않죠? 정직과 신뢰, 멈추지 않는 변화와 열정으로 만든 옷이니 한번 입으면 저절로 매니아가 됩니다”라고 전했다.
또 국내 최고의 원단을 사용한 제품으로 제도권 브랜드에 비해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기타 마케팅 등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제품에 투자해 기존 제품 대비 30%가량 가격대가 저렴한 것도 큰 장점이다.
조 대표는 “해마다 60%이상씩 성장하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국내 200호점을 목표로 매출 볼륨 1000억 원대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며 “국내 시장 안착 후에는 글로벌 무대(미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에도 진출해 내셔널 아웃도어 브랜드의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