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항공 브랜드 환율 공포

하루 수십억 앉아서 손해

2009-08-29     전상열 기자

“요즘에는 정부가 언제 외환 매도정책을 발표할지 몰라 점심시간에도 TV와 환율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어요.”
에쓰오일 자금운영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 자금운영팀은 최근 달러당
원화값이 곤두박질치자 매일 아침 외환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전 부원들이 모여 미팅을 갖고 있다.
자금운영팀이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장하는 것은 상반기 닥쳤던 ‘환차손 망령’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 에쓰오일은 2764억원의 대규모 환차손을 기록했는데 8월 한달 달러당 원화값이 떨어지는 속도를 보면 3분기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금운영팀 관계자는 “오늘 모증권사 보고서에서 원화값 하락으로 정유사 3분기 경영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우리 회사에 대해 1512억원의 순외환수지 적자를 예상했는데 그 추정치가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에너지도 상황이 급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금팀 내 외환서브그룹은 원화가치가 1원 떨어질 때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환차손 때문에 혈압이 오를 지경이다.
SK에너지는 2분기 말 현재 달러표시 외환자산과 부채는 각각 28억6000달러, 68억7000달러로 환위험에 노출된 규모(부채-자산)는 약 40억달러다.
이 중에서 외화 장기부채인 9억달러에 대해서는 헤지를 해놓은 상태라 31억달러가 환율변동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하루 외환거래 규모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조선업체들은 환율변동 자체보다 안팎의 시선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달러가치 급락으로 외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조선사 관계자는 “외부에서 워낙 비관적으로 보니까 주가도 많이 떨어졌다”며 “대차대조표 상의 손실이지 실질적인 손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3~4년치 일감을 확보해둔 대형 조선사들은 수주잔액이 천문학적인 단위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개사만 합쳐도 1200억달러를 넘는다. 선박대금은 대개 건조기간 동안 5차례에 걸쳐 들어오는데 삼성중공업은 100%,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60% 이상 선물환을 매도해 환위험을 헤지한다.
최근 조선업체 주가가 폭락한 이유는 환헤지 기준 환율보다 달러환율이 큰 폭으로 올라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봤기 때문.
예를 들어 1억짜리 선박을 수주해 950원에 헤지를 하고 달러당 원화값이 1080원으로 떨어졌다면 130억원을 날린 셈이다.


하지만 조선업체 외환 거래 담당자들은 “배 한 척 건조하는 데 보통 3년이 걸리며 그동안 환율이 또 어떻게 요동칠지 모른다”고 항변한다. 지금 당장 기준으로는 손실로 보여도 건조기간 분할납입을 모두 계산해봐야 환손실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금융팀 관계자는 “헤지환율은 그 수준에서도 회사가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환율”이라며 “원화값이 하락하면 오히려 가격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루 외환거래규모가 5000만달러에 달하는 회사가 최근 달러 급등에 느긋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고유가로 신음하던 항공사들은 환율 악재까지 겹치자 비상이 걸렸다. 항공유와 항공기 임차료를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달러가치 상승은 그대로 손실로 직결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원화값이 10원 떨어지면 연간 75억원 정도의 손실이 생긴다”면서 “환헤지 비율을 전체 필요 외환의 69%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등 적극적인 환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