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大亂 ‘회오리’ 부나
“하루짜리 급전 빌려라”
중견·중소기업을 몰아쳤던 자금난이 대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매출채권 해소와 상여금 지급 등 자금수요가 많은 연말을 앞두고 있음에도 은행들이 기업 여신 회수를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의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다소 여유가 있던 대기업들까지 자금줄이 말라가고 있다.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더라도 연장 기간이 1∼3개월 정도에 불과, 기업들은 현금흐름 개선 없이 채무구조만 초단기로 바뀌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자금시장의 현 난맥상이 내년 초에 그대로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자금난이 확대되면서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던 대기업들의 만기 1∼3개월짜리 융통어음(신용으로 발행하는 어음)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100억원 미만짜리로 잘게 쪼개 여러 군데서 할인을 받는 방식이다. 매출채권처럼 물품거래를 동반하는 대기업들의 진성어음도 사채시장에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0대 그룹 계열사인 L사는 요즘 은행을 상대하는 ‘전략’을 바꿨다. 자금담당 O씨는 “돈 갚으라는 독촉을 받고 난 뒤 사정을 봐달라고 하면 돈줄을 더 조이는 게 은행”이라며 “얼마 전에 ‘부도를 내든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더니 오히려 덜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기업들은 보유 자산을 절반값에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다해도 별 효과가 없자 정책당국과 은행을 향해 노골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또 다른 10대 그룹 계열사의 관계자도 “자산을 팔아도 은행들 모르게 해야 한다”며 “매각 즉시 회수해가기 때문에 조금의 여유도 가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