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믿을건 오로지 현금 뿐
“요즘 같은 때 마음 놓고 돈 쓸 수 있는 개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기업들은 더 심하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즘 경기 상황에서 당장 믿을 수 있는 건 현금 뿐이죠.”
A사 임원은 올해 실적 개선으로 들어온 현금성 자산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경기 악화와 자금난이 가중되며 시중에서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유동성 경색으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마저 현금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활로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64개 상장사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33조5339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43조1136억원으로 28.57%나 증가했다.
3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그룹은 12조4400억원을 보유한 삼성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7조7259억원)와 LG(6조1559억원)가 그 뒤를 이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수출대금 들어온 게 환차익으로 불어나 현금성 자산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장사 잘해번 돈을 다른데 쓸 여력은 없다. 올해 정해진 수준의 투자를 집행하는 것 외에 신규 투자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10대 그룹은 나은편이다. 10대 그룹 외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같은 기간에 비해 1.41%감소한 27조 8658억원으로 집계돼 경기침체에 자금난까지 염려된다.
중소기업들의 ‘돈 쟁탈전’도 뜨겁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며 11월17일 이후 일주일 새 31개 상장사에서 총34건의 자금조달 공시가 쏟아졌다. 기업들이 줄기차게 자금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건 이자율과 환율이 치솟고 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