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애족·투사·육욕·질투·정책적제스쳐…조능식
1999-11-16 한국섬유신문
▼여기 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
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
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묻어
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
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
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이 詩는 윤동주(尹東柱=1917~1945)의 <소년>이란 詩한
토막이다.
▼시어가 맑고 깨끗해서 때묻지 않은 청교도와 같은 순
정의 그림자가 그대로 가슴에 와 닫는다.
윤동주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신학문을 공부하러 적지
(敵地)일본에 가서 기어이 젊은 목숨을 잃고 말지만 나
라와 겨레사랑의 정열은 오늘에까지 아니 영원이 맥맥
히 이어져 구구절절 詩작품들 속에 살아 숨쉬리라-.
한편 그는 「대자연의 아들」임을 한시도 잃지 않았기
에 늘 그 앞에 엎드려 경외(敬畏)의 마음으로 붓을 들
었으리라. (그의 詩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에서도
명백하다).
▼세상에는 애국애족의 「민족시인」이 있는가 하면 대
자연을 노래한- 혹은 불꽃 같은 사랑과 인생을 노래한
「사랑과 고독의 시인」이 우리들 영혼에 물끼를 부어
주지만 「윤동주」는 나라 빼앗긴 슬픔에서 젊음을 불
태우며 겨레의 등불을 자처한 진정한 서사시인이었다.
-단풍과 낙엽이 어수선해서 일까- 새삼스레 그의 발자
취를 뒤돌아다 보게 하는 <계절>이다.
▼입동(立冬)이 지나가고 찬바람에 잡스러운 상념만이
난무하는 <우리들 주변>과 <지구촌>이어서 일지도 모
른다.
-「인도의 비폭력 민족독립운동의 “간디(1869~1948)”
에게는 실로 믿어지기 어려운 이면성이 있었다.
「세계의 운명을 폭력에 의해 짓밟히지 않게 하기 의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든 폭력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외쳤던 애국독립투사다.
“간디”는 1947년에 영국 식민지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성취시키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정에선 폭군(?)이었다.
▼인도의 풍습때문이겠지만 7세때 약혼, 13세에 결혼했
던 “간디”는 이렇게 술회한 일이 있다.
“나는 내 아내를 하루종일 감시했고 내 허락없이는 잠
시도 외출할 수 없었다”고.
이렇듯 그는 질투심이 강했는데 더구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갈 때에는 <임종>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부
인과 더불어 밀실에서 「육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
문이란다.
후일 “간디”는 그것을 크게 뉘우치고 있었다는 얘기
다.
이렇듯 세상 남녀(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은 성(性)문
제로 해서 크건 작건 고통을 겪고 있는가 보다.
“욕망이란 그 초기에는 상쾌하지만 거듭될 수록 괴로
워지고 드디어는 고통으로 변한다”는 어느 성인군자의
말마따나 모든 욕망이란 인간을 추악하게 만드는게 확
실할지도 모른다.
무분별한 <성욕>이나 <물욕>이란 분명하게 개운치 않
은 결과와 후회만을 초래하기 마련일까.
▼근간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성추문은 전세계의
화제거리로 참새들의 잇삿에 오르내리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생명에 종지부가 찍힐지도 모를 막
다른 골목에까지 쫓기고 있는 어제 오늘이었다.
그런데 몇일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클린
턴”을 앞장서서 맹공격하던 공화당이 의외의 고배를
마셨다. 그 선봉장격이던 상원의원 “깅리지”는 패배
의 책임을 지고 의장직과 의원직에서 허무(?)하게 물러
났다.
이렇듯 미국 정계의 양상이 바뀌자 성추문으로 코너에
몰렸던 “클린턴”은 한숨돌리게 됐다.
-미국은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나라지만 대통령의 <성
추문>쯤은 나라발전을 위해선 문제삼지 않는 대국적
(?)면모가 역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