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 경쟁력’ 세계 8위
디자인 인력은 ‘우수’ 인프라는 ‘열악’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전세계 17개국의 ‘국가 디자인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8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기관 매트릭스코퍼레이션과 서강대 정재학 교수가 참여해 지난 10월 10일부터 한달여 간 벌인 이번 조사에는 각국의 디자이너와 일반인 2210명이 참여했다.
전통적인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수치상으로는 한국이 디자인 선진국 대열에 바짝 다가간 셈이다. 그러나 개별 지표에서는 투자 확대, 국제화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디자이너 수준 높으나 투자 못 따라
‘개인의 디자인 능력은 우수하나 디자인 인프라는 열악하다.’ 조사 결과 나온 촌평이다. 이번 조사는 국가 공공분야, 산업분야, 국민·소비자 분야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입체적으로 이뤄졌다. 기업 경쟁력에 초점을 둔 기존의 헬싱키대학 디자이니움(Designium), 뉴질랜드 경제연구소(NZIER)의 ‘국가별 디자인경쟁력’ 조사와는 차별을 둔 부분이다. 그만큼 디자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가 중요하게 반영됐다.
조사 결과 디자이너의 양적·질적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기업의 디자이너 비율은 한국이 10%로 스웨덴(15%)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디자인전문기업의 디자이너 비율은 59%로 조사국 중 가장 높았다. 레드닷과 IDEA 등 2개의 국제 디자인상 수상 횟수를 토대로 한 ‘디자이너 질적 수준’ 항목에서도 한국은 1위를 차지해 개별 디자이너의 역량은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당 연평균 디자인 관련 투자 규모는 한국이 24만3264달러로 전체 17개국 중 15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이었다. 1위를 차지한 일본은 176만5482달러로 우리보다 약 7.26배 많았다.
국민 눈 높지만 대외 홍보 부족
디자인을 보는 국민들의 감각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선택시 디자인 우선 고려 비율’을 묻는 항목에서 한국은 25%로 1위였다. 평균 11.0%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상품을 구매할 때 디자인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 비중’도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게 나왔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가진 디자인에 대한 심미안을 외국에서는 모르고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의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중국, 대만 등과 함께 ‘디자인에 투자를 적게 하고 미적 수준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군에 속했다. 반면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은 ‘디자인 수준이 뛰어난 나라’군에 포함됐다. 한국인의 디자인 수준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자인 수도? 아름다운 도시 하위권
몇 년 사이 공공 디자인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국내 도시들이 디자인 경쟁을 펼쳤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디자인이 아름다운 도시’를 묻는 항목에서 서울을 꼽은 응답자는 2210명 가운데 단 8명에 불과했다. 17개국 도시 중 15위. ‘2010년 세계디자인 수도’라는 명성에 비해 초라한 성적이다. 상하이(12위), 타이베이(14위)보다도 낮았다. 1위는 파리, 2위는 로마, 3위는 뉴욕이 차지했다. 정부의 공공 디자인 진흥 정책 의지는 높지만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일규 디자인진흥원장은 “국민 개개인의 디자인 수준이 뛰어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디자인 투자가 열악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디자인 투자를 늘리고 ‘디자인 드라마’를 제작하는 등 디자인 문화 확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