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中企 참여하는 스트림간 협력 시급하다

2016-04-30     정기창 기자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선 김 모 사장은 원단 비즈니스 업계에 종사하며 동종 업계에서 매출 부문 수위를 다툴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비교적 일찍 섬유업계에 뛰어들어 업력만해도 17년이 넘었다. 그런 김 사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 회사가 취급하는 중국산 원단 비중은 전체 매출의 10% 미만이지만 계속해서 중국산 원단을 쓸 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사장은 올들어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며칠 전 중국에 갔다 왔는데 설비 투자가 엄청나게 이뤄졌더라. 한국 염색업체들은 설비 규모가 작으니 폴리를 담궜던 염색 욕조에 나일론을 담는다. 컬러 퀄리티 기복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중국은 워낙 대량 생산 체제라서 수율과 퀄리티가 높아 원가 경쟁에서는 도저히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사장은 바이어가 요구하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중국산 생지 수입을 늘리고 염색과 후가공은 한국에서 할 생각이다. 기존에 거래하던 한국 업체들이 떨어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다. 소재와 기술 개발이라는 원론적이지만 진부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자. 무엇이 문제일까?

김 사장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공장(제직)하는 사람들이 변화 흐름을 못 따라 잡는다. 중국과 대만, 일본 업체들이 어떤 기계로 어떤 가격을 내는지 모르더라. 경쟁국들 어떻다고 하면 원인 파악하고 대응할 생각은 안하고 자기들 방식을 고수한다. 최근 섬유업계가 많이 어렵다. 그러나 오더가 없어진건 아니다. 딴데로 가는거다. 도대체 왜 오더가 줄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 태반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안되면 움직인다. 누가 왜 우리보다 앞서가는지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있다. 우리나라는 제직과 준비, 염색 모든 단계별로 각 회사의 마진이 들어간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요인이다. 서로 오픈하고 단가 맞추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중국서 생지 수입 관세가 약 13~15%인데 이렇게 들여와도 국산보다 15% 정도 차이가 난다. 이걸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균형잡힌 전후방산업은 한국섬유패션 강점

보병부대가 전장의 실지 회복 앞장서듯

이젠 섬유 中企 애로 살피는 배려 요구돼

10년 이상 경쟁력 강화 화두 스트림간 협력

윗목의 온기, 차고 시린 아랫목까지 전할때


생산 현장의 안일한 사고와 스트림간 가로막힌 칸막이가 우리 경쟁력을 갉아 먹고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개별 기업의 게으른 사고방식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못 따라가면 도태될 뿐이다. 문제는 스트림간 협력이다.

국내 섬유업계는 10년 이상 스트림간 협력을 경쟁력 강화의 중요한 화두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문제는 주로 큰 회사들 위주로 논의돼 왔다. 일면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2013년 2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섬유패션 스트림간 협력 간담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은 화섬메이커를 비롯, 한국을 대표하는 굵직한 섬유패션 대표기업들이 모두 포함됐다. 그동안 성과도 많았다. 최근 성기학 회장이 성공적 사례로 언급한 미니페어(섬유패션기업간 수요 맞춤형 신소재 컬렉션)도 스트림간 협력 간담회의 산물이다. 그러나 아직 윗목 온기가 아랫목까지 번지기에는 모자란 점이 없지 않다.

전장에서 제공·제해권을 장악해도 실지를 회복하는 역할은 보병부대 몫이다. 섬유패션 산업에서 이 역할은 누구의 몫인가. 바로 중소기업이다.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의 성장 없이 국내 섬유패션산업은 균형발전을 이룰 수 없다. 산업을 이끌어 가는 대표기업들이 스트림간 협력에 목소리 낼 곳 없는 중소기업들을 참여시켜 구들장 따뜻한 윗목의 온기를 차고 시린 아랫목까지 전해 지도록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후방 산업이 고르게 발전돼 산업 기반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경제 구조는 한국 경제의 강점으로 손꼽힌다. 이들 중소기업이 뒷받침 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의 장점인 전후방 산업기반 몰락이 당장 눈앞에 닥쳐 올지도 모른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국내 섬유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는 회자된지 이미 오래다. 카피가 난무하고 누가 얼마 받았다고 하면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나는 더 낮게 줄 수 있다”는 역오퍼로 업계가 멍든 탓이다. 세계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바로 앞에 보이는 밥그릇 싸움에 몰두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서는 최근 불어닥친 불황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수년 전 섬산련은 기존에 이름이 알려진 중견 또는 대기업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있는 중소기업 위주로 산업 자문단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탓에 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부족해 실패하고 말았다. 요즘 그 때 일이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