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원대연 한국패션협회 회장 - “세계적 브랜드 되려면 똑똑하게 만들어라”
서울대서 ‘가치 디자인’ 몰두 경영철학 특강 좋은 품질, 좋은 가격, 좋은 서비스 잊은적 없고 불모지 韓패션시장 노세일로 정면 돌파 ‘폴로 때려잡자’…토탈 패밀리 ‘빈폴’ 육성 앞장
2016-05-06 정정숙 기자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은 2006년 ‘가치를 디자인하라’는 책을 썼다. 1980년 삼성물산에 프랑크푸르트 지사장으로 입사해 98년 삼성물산 의류부문장 및 제일모직 대표이사를 맡을 때까지 겪었던 고뇌와 경험을 책으로 엮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통해 양(量)에서 질(質)중심으로의 전환과 디자인이라는 화두에 매달려 변혁의 전환기를 온 몸으로 느낀 체험 보고서다.
그는 “10년 후 국내 최고의 토탈 패밀리 브랜드로 육성하겠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 가면 전제품 라인을 모두 살 수 있는 토탈 패밀리 매장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충무로는 상권이 좋아 LG같은 대기업 브랜드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매장들이 빠지고 한산한 거리가 됐다.그는 빈폴을 키워 10년 후 400평대 플래그십스토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때 정한 행동 구호가 “폴로를 때려잡자”였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좀 더 도전적인 캐치플레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폴로를 비롯한 외국 브랜드를 모두 비교·분석했다. 폴로가 생산하는 공장은 어디인지 원사나 원단은 어떤걸 쓰는지 살펴보고 더 좋은 원부자를 쓰기로 했다. 제품 디자인을 높이고 매장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 고객만족 서비스에 돌입했다. 이른바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 전략이었다. 소재와 디자인, 서비스 등 10여개에 이르는 기준을 마련해 경쟁상품과 매 시즌 비교했다. 여기서 3~4개 조건만 미달해도 대책을 세워 고쳤고 이를 임원 승진 고과에 연결시켰다.이제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었으니 유통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콧대 높은 메이저는 제쳐두고 울산 부산 대구 광주의 지방 백화점들을 공략했다. 반드시 폴로와 똑 같은 평수에 더 좋은 고급 인테리어를 적용했고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예 출점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전략으로 매출을 올리고 평당 매출 효율을 비교하며 메이저 백화점을 설득했다. 메이저 빅3 백화점에 입점할 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고 결과적으로 대 성공을 거뒀다.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한 결과 소비자 인지도는 상승곡선을 그렸고 노세일 정책을 고수하면서 판매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당시 내로라하는 유명 브랜드도 60%를 팔면 꽤 잘한다고 평가받던 시절이었다.2000년 들어 폴로와의 제 2라운드 대결이 펼쳐진다. 폴로는 그동안 라이센스로 한국에 진출했으나 세계화 전략에 따라 본사가 직접 한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폴로는 여기서 결정적인 헛점을 노출했다. “옷은 시즌 상품인데 폴로는 납기가 안 맞았다. 우리 제품은 새벽 5시에 나오는데 11시에 제품 나오면 이미 경쟁력에서 쳐지는 것 아닌가. 3월에 만든 옷을 10월에 팔 수는 없지 않은가. 폴로를 잡을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했다.”그는 장기근속 사업부장을 전격 교체하고 남성복 중심에서 중요 아이템별 사업을 확대해 독립사업부제와 소사장제를 실시했다. 유통을 독립적으로 전개해 매출과 판매율이 급상승하면서 빈폴은 외국 수입 브랜드로 착각할 정도로 고급 이미지 형성에 성공했다. 고객의 70%가 유행에 민감한 10~20대 젊은 층이었다. 가짜 빈폴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빈폴은 그가 계획한 딱 10년만에 확고한 1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서울대학교 매장에서 쁘렝땅 백화점까지 가짜 빈폴 의류가 버젓이 판매될 정도였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토종 브랜드가 말(POLO)을 잡았다”는 기사를 써대기 시작했다.원대연 회장의 ‘가치 디자인’은 2004년을 끝으로 회사를 나오면서 삼성과의 연을 끊었다. 그는 지금 글로벌 브랜드 육성을 화두로 새로운 가치 디자인에 몰입하고 있다. “패션은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문화창조산업이다. 섬유, 봉제는 해외 이전을 하지만 패션은 정보와 보는 눈만 있으면 고부가를 이룰수 있는 지식정보 산업이다. 그런데도 한국패션산업은 지난 40년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답답하다. 한 3년 해보고 어렵다고 하지말고 10년을 내다보는 경영이 필요하다.” 그에게 있어 가치 경영이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가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