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에서는…] ‘나만 잘났다’는 식 이젠 버려야

2016-05-19     이원형 기자

최근 몇 달간 국내 캐주얼 업체를 돌면서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던 업계였던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 하지만 매번 되풀이 되는 멘트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업체는 매달 신장 중이다”, “반응이 좋다, 제대로 감성이 통한 것 같다”, “다른 곳은 매출 많이 떨어졌다던데.”

새로운 신선함이 없었다. 죽기 살기로 끝장 내 보겠다는 절박함도 없었다. 그저 나만 잘났다 식의 거만함이 넘쳐흘렀다. 기자에게 캐주얼 업체란 난공불락, 이미 무너져 가는 모래성에 들어가는 것 만큼 답답하고 두렵게 다가왔다.

1997년 IMF 이후로 급부상했던 국내 캐주얼 업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업계는 새로움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했다. 그 바람에 모든 옷이 비슷해졌다. 어떤 컨셉이 조금만 유행을 탄다 싶으면 모두가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프린트를 찍어냈다. 극히 지루하고 따분하고 촌스럽다. 교복 안에 입을 아이들 티셔츠 사려는 어머니 손님이 아니고서야 20대 초반의 남녀가 “난 오늘 ○○옷을 사러 갈 거야”라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비심리가 급감한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경제살림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살만한 옷들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 싼 맛에 산 옷은 재구매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역시나 입어보다보면 품질에서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해외 SPA브랜드로 눈길이 돌려질 수밖에 없다. 국내 디자이너들도 SPA 브랜드의 품질을 인정한다. 위기감을 느낀 국내 백화점과 아울렛은 지속적인 세일행사로 눈길을 돌리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모두 비슷해 보이는 옷들의 유혹은 매력적이지 않다.

시각장애인 모험가 송경태 씨는 얼마 전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 네팔 대지진이라는 천재지변에 가로막혀 중도 복귀했으나 시각 장애인 최초로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국내 패션 업계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뼈저리게 직시할 때다. 앞이 안 보인다는 심정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세부터 길러야 한다. 해외 SPA에 밀려 2류로 물러나 있는 현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신선한 아이디어와 끊임 없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패션 영역 구축이 요구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