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지대연의 깊은 뜻…조능식

1999-10-28     한국섬유신문
▼나이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를 묻는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 꿈이 뭐냐고 묻는다. 세상이 어떠냐고 묻지 않는다. 감성(感性)이 어떤가를 묻는 다. 이것은 오랜 세월 멋과 순수와 정서를 추구해온 어느 <낚시인>의 희미한 추억의 한 토막. 그는 60여년동안 자연과 더불어 낚시를 즐겨오면서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이란 말에 심취한다.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이 크게 그러하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같으면서도 실로 가장 크게 자연스럽다”-는 뜻이란다. 그는 순 서울나기이기에 낚시를 통해 자연을 공부하며 시골인심에 가까우려 노력함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찾는 다. -실타래子는 그런 자신을 사랑한다……. ▼10월이 다가고 내일모래가 11월이다. 붕어낚시의 황 금기는 봄과 가을이지만 10월말에서 11월이면 가을붕어 낚시도 종막을 고해야할 시기다. 오랜 세월 주말이면 줄기차게 서울장안을 빠져나간 실 타래子에겐 각가지 사건사고(事件事故)들이 쑬쑬했다. 어떤 때는 낚시때문에 <목숨>을 건졌고 어떤 때는 그 목숨을 잃을뻔도 했다. 또 단골 낚시터의 농가 사람들과는 친척 이상으로 가까 워져 3대에 걸쳐 다정하니 오늘도 왕래하고 있다. -더구나 마음이 통하는 <낚시친구>들을 사랑하고 아 낀다. ▼그것은 몇년전 이맘때인 10월말의 어느 주말. 오곡백 과가 무르익고 나무잎들은 누렇게 단풍이 물들어 한가 로움의 행복이 두려움마저 자아낼 듯 싶은 시공이었다. 벼를 비어내고 난 다음 붕어가 잘올라오는 「망월 수로 (望月水路)=강화 내가(內可)저수지의 지류」로 친구인 치과의사 “이승철”박사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수 로의 상류-수문(水門)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좋다……참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 이박사는 토 해 낸다. 그는 으례히 낚시터에 다달으면 <심호흡>과 더불어 노래처럼-어린애처럼 <좋다>를 연거푸 외쳐대 곤 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탁한 공기와 환경속에서 하루 종 일 환자들을 치료하다 1주일만에 도심을 빠져 나와 맑 고 깨끗한 대자연의 품에 안기면 정녕 「살맛」이 날지 도 모른다. 그것도 제일 좋아한다는 「친구」가 옆에 있어서이랴-. ▼망월수로의 그날 「조과(釣果)」는 그런대로 심심치 않았다. 이박사와는 불문율로 낚은 고기는 그 자리에서 다시 놓아주는 방류(放流)의 또다른 낚시의 만족감을 누리곤 했기에 그는 :”엄마젖 더 먹고 커서 다시 오너 라”고 웃으며 붕어입에 걸린 낚시 바늘을 조심스럽게 빼고는 물가에다 가만히 놔주는 모습은 「동심여선(童 心如仙)」의 경지를 방불케 했다. -어린이같이 욕심없 는 마음은 신선과 통한다-는 그것-. 실타래子가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지만 낚시에 있어 < 고기>는 이차적이다. 「내일 낚시간다는 설레임(60년이 됐는데도 변함없이…)」과 친구들과 만나서 세상의 나 쁜 놈들 욕하는등 잡담하며 낚시길에서 들리는 단골 「해장국집」들-낚시터 근처의 농가 사람들과의 반가 운 만남등등 그 <과정>이 고기보다 몇배 더 소중한 것 이다. ▼망월수로의 그날은 참으로 쾌적한 만추(晩秋)의 풍광 인데다 이박사의 기분이 매우 좋아보여 덩달아 즐거웠 다. 1.4후퇴때 평양에서 홀로 남하한 이박사는 가족을 이북 에 두고 있어 어딘가 <애수>에 잠기곤 하는 사나이의 「감춘 슬픔」을 이따금 엿볼 수 있었기에 실타래子로 는 동정도 동정이지만 우정이 남달랐다. -그와 망월수로에 앉아있을 때 동리의 초등학교 2·3 학년짜리 아이녀석이 우리들 옆에 와서 밉지않게 이런 저런 말벗(?)이 돼주곤 했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우리는 낚시도구를 챙기고 둑위에 세워뒀던 차에 올랐다. 강화읍(지금은 인천광역시 강화구지만)의 단골 음식점 에 들려 식탁을 끼고 앉았을 때 이박사는 “아까 망월 수로의 그녀석 있지? 그녀석에게 칸반짜리 낚싯대 하나 를 주고 왔어…낚실 좋아한데서…그런데 그놈 성이 희 성인 「봉」가랬어-하하하” (이북에 두고 온 어린 것 들이 생각났을 게다). ▼근 40여년을 같이하던 그는 이미 5년전 이 세상을 떠 났다. -낚시터주변의 들국화 하나에도 무심치 않던 이박사의 체취가 요즘도 그 물가에서 코에 찡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