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떠나는 일본 바이어 되돌리려면
2016-06-12 정기창 기자
매년 11월20일은 전문신문의 날이다. 한국전문신문협회는 국내 전문 신문 발행인들이 협동해 전문 신문의 건전한 발전과 전문 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이 날을 정해 매년 기념식을 치르고 있다. 올해로 51돌을 맞았고 기념식 행사에서는 매년 훈·포장 및 유공자 표창이 이뤄진다.
행사장에 가면 문화부 장·차관, 국회의원들로부터 항상 듣는 얘기가 있다. 요약하자면 “전문 언론은 정치를 다루지 않는 순수 경제지로서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 역할을 충실히 해 달라” 정도가 된다. 정부와 정치 불신이 높은 한국 언론 정서상 전문신문까지 관료와 정치인 때리기에 가세하면 골치 꽤나 아플 것이라는 꼬인 심사는 있었지만, 맞는 얘기다. 경제가 정치 논리와 합치되는 순간, 팩트는 사라지고 이데올로기만 남아 득될 게 하나 없기 때문이다. 팩트는 버리고 주관적 주장만 내세우는 무수히 많은 온라인 데일리들의 행태가 그렇지 않은가.그런데 최근 한국 섬유류 수출 일선에서 일하는 한 기업인 대표로부터 들은 얘기는 비즈니스 역시 자연스러운 경제 논리로만 해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마음이 복잡해 졌다.對日 섬유류 수출 업체인 A사는 1~2년 사이 10년 넘게 거래하던 바이어 몇 곳이 중국으로 빠져 나가면서 매출에 타격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저평가된 엔화 환율, 일본 내수 시장의 침체, 거세지는 중국 및 동남아 의류와의 가격 경쟁력 저하 등이미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으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한일 외교 경색이 가장 큰 문제다. 작년부터 혐한 시위가 심해졌는데 일본과 20년 넘게 거래하면서 이런 정도까지 나빠진 것은 처음이다. 요즘에는 감정이 상할까봐 일본 바이어들에게 조크(joke)도 못한다. 괜히 농담했다가 무슨 말이 나올지 겁이 난다. 거래가 오래돼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는데….”그가 일본 바이어 이탈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다름아닌 양국간 국민감정의 괴리였다. 정신대 위안부 문제로 양국 정부와 관료가 다투는 사이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신발을 거꾸로 고쳐 신은 것이다. 양국 정치인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화해 분위기 조성도 이제는 물건너 간 지경이라는 평가가 많다.극한 치닫는 韓·日 국민감정 대립에
이젠 감정 상할까 농담도 못 건네
환율·경기불황 등에 바이어 이탈
양국간 중요한 비즈니스 해법은
국민 감정 삭일 품질과 디자인뿐
일본 기업은 클린 네고로 금융권에서도 반기는 양질의 거래처다. A사 대표는 “지금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디자인 능력으로 가격 경쟁력을 상쇄하며 입지를 다졌는데 정치권이 흔들어 놓는 바람에 신용장 개설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일 의류 수출 업체들 교역 여건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현지 경기 호전의 신호가 곳곳에서 보이지만 아직 본궤도에 오를만큼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우리 업체들의 수출 원가만 잔뜩 높여 놓았다.A사 대표는 그래도 방법은 있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디자인과 개발실 인력을 확충해 매장에 똑같은 옷이 깔려 상품이 정체되지 않도록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매주 10개 스타일씩 디자인을 개발하고 한국의 우수한 봉제 기술을 활용하면 떠나간 일본 바이어를 되찾아 올 자신이 있다.”전세계 의류패션 시장 유행을 주도하는 패스트패션이 이 회사에게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다행히 중국으로 돌아섰던 일본 바이어들이 올해부터 다시 A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앞선 품질과 디자인은 극에 달한 국민감정까지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인 셈이다. 이 회사는 더 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금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중 FTA를 계기로 돈과 물건의 왕래가 더욱 편해지면 조만간 우리 업체들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한가지 더. 이 회사는 수출하는 옷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내 하청 공장에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오더를 주고 공장은 일감 걱정 없이 기술을 개발하면서 더 나은 품질로 보답하고 있다. 봉제 공임이 높아서 한국 생산이 어렵다고 하지 말자. 이 회사가 땅파서 벌어 먹는 곳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