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코엑스에 있는 유명 편집샵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어떤 옷을 사야할 지에 대한 방향을 잃어버렸다. 처음에 맘에 들었던 옷이 어떤 제품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 넓고 많은 제품이 있었다.
현재 국내 패션 업계의 유통책은 ‘편집샵’을 기점으로 재정비 된지 오래다. 제일모직 비이커, LF 라움 등과 같은 대규모의 편집샵은 해외 유명 브랜드 모셔오기 경쟁이 치열하다. 무이, 쿤, 쿤위드어뷰, 10꼬르소꼬모, 편집샵 계의 대모 격인 분더샵도 마찬가지다. 뭐니뭐니해도 국내 신진디자이너 및 국내 스트리트브랜드의 터전을 열어준 건 ‘에이랜드’다. 국내에서 좀 떴다 하는 브랜드 모두 에이랜드에서 유통 기반을 마련했다. 그만큼 국내 오프라인 편집샵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랜드 이후로 여러 기업에서 대형 편집샵을 열었지만 실적은 글쎄다. 중국 관광객 매출로 연명하고는 있으나 메르스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면 닭 쫓던 개 꼴을 면치 못한다. 패션업계는 오랜 성장통을 앓고 있다. 도무지 커지지를 않는다. 신규 브랜드 안착도 쉽지 않다. 소비자가 편집샵을 거쳐 온라인샵, 직수입 샵으로 포션을 옮겨가고 직접 발품을 팔아 동일한 디자인에 좀 더 싼 옷을 찾기 때문이다. 과거 유통전략이 소비자 머리 위에 있었다면 이젠 소비자가 갑 중의 갑 입장이 된 것이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편집샵엔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과 유니크한 브랜드들이 한 데 어우러져 액세서리 하나라도 집어 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반면 규모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객과의 유대감이 부족해서다. 단순히 고객을 구매하는 자로서 응대한다는 점이 매출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샵은 고가 브랜드가 가득해야 하고, 구매력 있는 사람들만 방문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좋아하는 옷을 사기 위해 코묻은 돈을 모으는 어린 학생들도 있다. 그들의 눈높이를 만인에게 맞추고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국내 고객은 드라마,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놀이공원이나 대형 유통샵에도 테마관이 있다. 공통된 요소를 모아 여러 아이템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매력이 낮은 고객을 위한 합리적인 가격 테마 존을 따로 만든다거나 주마다 한번씩 컨셉이나 테마를 선정해 볼거리가 있는 매장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판매 각축장이 아닌 고객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장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