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피스트리(벽걸이)"와 "고브랭 직"…조능식

1999-10-24     한국섬유신문
▼요즘 우리들 주거환경의 변화로 서구식 「태피스트리 (벽걸이)=TAPESTRY」와 「카핏=융단」 등이 많이 눈에 띈다. 「태피스트리」를 프랑스語로는 「태피스리 =TAPISSERIE」라고 한다. 원래는 프랑스語에서 영어로 건너간 것이지만 이따금 영어나 프랑어가 제각기 다르게 표기되는 수를 본다. 프랑스語인 「태피스리」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태피 스=TA PIS」란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테피스의 뜻은 「융단」「카핏」「래그」「깔개」등 이다. 그리고 다시 「태피스」의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語인 「태피츔=TAPPE TIUM」이 되고 또다시 그 전으로 올라가면 중세(中 世)희랍語인 「태피치온=TAPET ION」이며 한편으론 고대 희랍語인 「태피튼 =TAPETON」이다. 이러한 말들의 어원(語源)은 「작은 모포(毛布)」라든 가 혹은 「작은 융단(絨緞)」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희랍>이나 <로마>에서 융단을 쓰기 시작한 것은 동양의 영향이 컸었기에 그 근원은 고대(古代) 페루시 아語였으리라는 짐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고대(古代) 오리엔트의 화려했던 무 늬들의 융단이 서구로 건너가 귀중품 취급을 받게 되어 「깔개」보다는 장식용의 「벽걸이」나 「책상보」로 쓰여졌다. 그 후 서구에선 융단(카핏)이 대량으로 보급 되었는데 「태피스」는 원래의 「융단」이란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넓은 의미로의 「벽걸이」「책상보」를 뜻하 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러한 <역사적>배경에 의한 것. ▼ 이렇게 해서 「태피스」에서 「벽걸이」전용어로서 의 「태피스리→태피스트리」란 말이 생겨났다. 현재 「태피스트리」는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색실로 무 늬를 짜서 만든 직물(綴織=철직)인 것으로 원래 오리엔 트조(調)인 소위 「아라베스크=아라비아풍의 무늬」모 양의 도안인 화초(花草) 동물(動物) 같은 것이 주제이 지만 이외에 서구에선 특히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역사적인 것이나 서사시(敍事詩)등에서 따온 것-또는 종교적 주제의 것 등-회화조(繪畵調)로 구성된 것이 많 다. ▼「태피스트리」의 하나에 프랑스의 「고블랭 =GOBELIN」이 있다. 프랑스에선 「백년전쟁(百年戰爭)=1338~1453년 사이에 단속적(斷續的)으로 이어진 영국과의 전쟁)」 이후 국 가적으로 황폐해진 바람에 좋은 「태피스트리」의 생산 이 중단되고 값비싼 수입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프랑소아 1세」는 1540년경 「폰텐브로」에다 태피스트리 공장을 만들었고 「앙리 2세」는 파리에다 같은 공장을 만들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601년 앙리 4세가 단안을 내려 당시 벨기에·프랑돌 지방에 살고있던 「태피스트리 제작기술자」인 “프랑 소아·드·라·브랑슈”“마르크·드·코먼스”등 약 2 백여명을 규합하고는 파리근교의 「고블랭가(家)」의 큰 건물을 사들여 그들에게 빌려주곤 「태피스트리」 제작전용의 공장을 가동시켰다. 이것이 「고블랭 직(織)」이란 리름의 태피스트리의 시 조가 됐다. ▼따라서 앙리 14세는 외국제 태피스트리를 수입금지시 키는 한편 국내 생산의 태피스트리를 보호육성했다. 당시 이 공장은 건물 원소유자 이름을 따서 「고블랭」 이라 부르게 됐지만 고블랭이란 명칭은 그로부터 160년 전쯤인 1440년 “쟌·고블랭’이란 프랑돌인(人)이 염 색공장으로 처음 세웠던 것이라고-. 그 후 루이 14세 시대인 1662년 당시의 제상이던 “콜 벨”은 왕의 명령으로 파리근교에다 몇개의 태피스트리 제작공장과 대대적인 가구공장까지 곁들인 「왕립가구 제작소」를 만들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태피스트리와 고블랭 등은 「벨사유 궁전」등을 화려하니 장식했고 우방 외국에는 훌륭한 선물로 쓰여져 프랑스의 富와 영광과 권력의 상징으로 서구전역에 이름을 떨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