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견인차 ‘르돔’ 오픈 1년, 성과는…“국내서 원부자재 조달과 봉제까지…최초의 쇼룸”

디자인-패턴-샘플로 이어지는 컴팩트한 의류 생산 강점 디자이너 지원으로 국내 봉제 산업 발전 기틀 마련

2016-07-21     취재부
K-패션을 화두로 작년 7월부터 활동에 들어간(공식 오픈은 9월) 쇼룸 ‘르돔(REDOME)’이 동대문패션비즈센터에 둥지를 튼지 만 1년이 됐다. 작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후즈넥스트(WHO’S NEXT 2014)’ 참가를 시작으로 10회 넘는 국내외 이동쇼룸을 개최하는 등 그동안 17억원 이상의 계약 실적을 올렸다.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HIC에는 쇼룸 공동부스 형태로 참가해 총 40만 달러 이상의 상담 성과를 거뒀다. 중국은 물론 파리, 모스크바, 싱가포르, 홍콩 등 안다닌데 없이 다니며 해외 이동 쇼룸을 열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르돔’하면 패션과 디자이너를 떠올리지만 정작 르돔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여타 전시회나 비즈니스 모델은 오더 수주가 목적이었던 반면 르돔은 의류 제작에 필요한 원부자재 조달과 생산을 모두 한국에서 한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지난 1년간 팔린 17억원 상당의 의류에 들어간 원단과 봉제 소싱이 모두 국내에서 이뤄졌다는 뜻이다. 까다로운 디자이너 의류를 생산할 수 있는 우수 봉제 협력 공장이 30개가 넘고 전문 장비와 봉제 기술을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들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동대문패션비즈센터 203호의 ‘기술트레이닝 스튜디오’는 이 같은 국내 봉제 산업 발전을 표방하는 르돔의 심장부다. 두명이 한조를 이루는 2개 샘플팀과 경력 40년 이상의 패턴사, 재단사들이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에서 패턴, 샘플로 이어지는 고퀄리티 의류 생산이 이처럼 컴팩트하게 이뤄지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한국의류산업협회 김왕시 부장은 르돔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봉제 일감을 주고 기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으로 정의 내렸다. 그는 “오더 수주를 늘리기 보다는 (봉제 산업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모델을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품질과 디자인이 좋다고 모든 옷이 다 잘 팔릴수는 없는 법. 르돔은 맨파워나 마케팅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디자이너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기서 나오는 디자이너 의류를 프로모션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팀도 따로 두고 있다. 르돔 소속 디자이너들이 해외 이동 쇼룸이나 서울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마치면 VMD와 세일즈매니저 등으로 이뤄진 5명의 매니저들은 오더 수주 팔로우업 마케팅을 펼친다. 마케팅 뿐만 아니라 해외전시와 이동쇼룸 등에 필요한 지원도 함께 하고 있다.

김왕시 부장은 “외부에서는 르돔하면 패션을 떠올리지만 우리는 오히려 봉제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봉제 공장 제품이 해외에 직진출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정기창 기자 kcjung100@ayzau.com

[46년 외길 ‘르돔’ 홍성길 패턴사] “박근혜 대통령 ‘옷’ 제가 만들었습니다”

직접 의상 스케치까지박 대통령, 감각 뛰어나

“그 분께서는 나를 진정한 기술자로 대해줬고 그 사실에 감사한다.”
대통령이 입는 옷을 만들어 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46년간 패턴사의 길을 걸어온 홍성길 패턴사<오른쪽 사진>는 박근혜 대통령 뿐만 아니라 주요 국회의원들의 전속 패턴사로 근무하며 남들이 흔히 가질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당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씨는 한 디자이너 콜렉션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 곳 손님으로 드나들던 박 대통령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국회의원에서 당대표를 하던 삼성동 자택부터 대통령이던 청와대 시절인 2014년까지 총 18년을 ‘옷’으로 대화했다.그는 박 대통령을 “가식 없고 소탈한 분”으로 기억했다. “가봉(시침질, 맞춤복 완성 전 체촌하는 작업)을 하러 청와대를 방문하면 방에 불이 다 꺼져 있을 정도로 검소했다”며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면이 많다”고 했다.홍씨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비싼 옷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입는 그저 그런 가격대 원단에 다만, 본인 스타일에 맞는 실루엣이 살아나는 디자인을 좋아했다.“(박) 대통령께서 특별히 선호하는 소재나 컬러는 없다. 최고급 소재의 값비싼 옷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옷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옷을 보는 눈이 예리하고 꼼꼼하다. 특히 선(線)이 잘 살아 있는 옷을 선호하셨다.”홍씨는 박 대통령이 현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직접 전달하고 홍씨 밑에서 일하던 직원 결혼식에는 손수 금일봉까지 전해줬다고 한다.홍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입던 의상 스타일을 빼곡히 정리한 스크랩북을 갖고 있다. 대부분 사진과 신문 기사 스크랩인데 이중 유독 손으로 그린 그림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그린 디자인 스케치다.디자이너들이 그린 숙련된 솜씨의 스타일화에 익숙한 홍씨 눈에도 “제대로 그린 옷”이었다고 한다. 홍씨가 박 대통령 스타일화를 받아 만든 이 옷은 실제 일간지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2009년 9월30일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토머스 캠벨 관장과 만났을 때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이다. 그는 “대통령께서는 당신이 만족하는 옷이 나올 때까지 몇번이고 기다려 줬다. 보통 사람들은 옷이 빨리 안되면 화를 내기도 하는데 한번도 이런 일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마음 편하게 옷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씨는 이제 더 이상 박 대통령의 옷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국회의원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경호와 보안상 등 까다로운 부분이 많아져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럼에도 18년간 꾸준히 옷을 만들수 있었던 동력은 자신을 진정한 기술자로 대해줬던 박 대통령의 ‘소박한 정’이었다.

홍성길 패턴사는 작년부터 한국의류산업협회(회장 최병오)가 동대문패션비즈센터에서 운영하는 ‘기술트레이닝 스튜디오’에서 패턴실장으로 일 하고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패턴사라는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패턴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 크다고 한다. 그는 “패턴사는 힘들고 천대받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동률 기자 drkim@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