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카텍스타일·RGB(이하 파카)가 베트남에서 새로운 성장을 모색합니다. 이미 청사진은 그려졌어요. 파카의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앞세워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벤더들의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국의 선진 밀(mill) 기술과 베트남 섬유산업의 결합은 새로운 성장을 예고하는 것이죠. 이미 베트남 제2의 섬유업체와 투자 MOU까지 맺었어요. 지금 베트남은 TPP 최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파카의 새로운 출발이 앞으로 큰 이슈가 될 겁니다.”박풍언 파카 고문이 파카의 재도약 청사진을 밝혔다. 파카가 한국을 떠나 포스트 차이나로 급부상한 베트남에서 제2의 도약에 나선다. 파카는 교직물 국내 간판주자다. 이런 파카가 왜 베트남에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것일까?
박 고문은 “이번 파카의 해외진출과 현 섬유업계의 연관관계를 검토하는 등 향후 한국 섬유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심각하게 찾아봐야 한다”며 “봉제 산업은 해외 진출에 성공한 좋은 경우지만 의류 소재인 원단제조 산업은 해외 진출이 미비한 상태다. 특히 베트남은 화섬 기능성 원단은 전무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기술과 브랜드가 있는 파카의 베트남 진출은 상당히 고무적일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섬유전문인(전 신성통상 사장 역임)으로, 또 파카 고문으로, 파카가 베트남에서 성공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가고 있다.박 고문은 “이미 베트남의 중요한 기업과 MOU 계약에 이어 해외 바이어로부터 내년도 2500만불 원단공급계약서까지 확보된 상태다. 또 국내 손꼽히는 의류 업체의 물품 공급에 대한 일부 계약서가 준비되는 등 제2의 도약을 위한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파카는 적어도 작년까지는 국내 염·제직 업계의 선도적 기업으로 명망을 드높였다. 그러나 올들어 달라졌다. 망고, 자라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오더가 밀려오지만 생산을 않는다. 잘 나가던 파카에 무슨 일이 터진 것일까?작년 6월 박동호 파카 회장은 큰 결단을 내렸다. 회사 정리였다. 전기료와 염·안료 등 치솟는 제조비용에 더 이상 국내 생산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여기에 동종 업체에 비해 높은 임직원 임금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국내 간판 염직물업체 파카 스스로 국내 생산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박 회장이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지만 갑작스런 건강문제 때문에 경영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럽이 발칵했잖습니까. 당시 유럽 시장은 파카 물량의 90%에 달했습니다. 스스로 리스크 체크를 못한 채 또 유럽발 경제위기가 터지고…. 경기는 더욱 악화국면으로 치달았어요.”박 고문은 이 시점이 파카 경영의 적신호가 켜지는 분기점이었다고 말했다. 1차 데미지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판단력까지 떨어진다. 박동호 회장도 그랬다. 자신이 잘하는 영역에서 승부수를 찾아야 했지만 눈길을 돌렸다. 봉제 투자였다. 2차 데미지가 됐다. 2014년 경영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소위 크롬법은 중국의 염·안료 가격을 폭등사태로 이끌었다. 반면 판매 가격은 제자리 걸음만 걸었다. 누구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악재는 연거푸 일어난다고 딱 그짝이었다. 박 회장은 악재에 떠밀려 회사가 손도 쓸수 없는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스스로 정리하는 방향을 택했다.현재 파카는 금융권 부채와 거래처들 채권을 대부분 갚고 빚이 제로(zero)에 가까운 ‘클린 컴퍼니’로 존재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염색공장은 9월 말이면 매각 완료될 예정이고 기타 고정자산 매각도 계속해서 서두르고 있다.■R&D에 강한 ‘섬유엔지니어’
박동호 회장은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이다. 75년 효성그룹에 입사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을 위해 일본 아사히카세이와 합작시 창설멤버로 참여했다. 일본 자문을 받아 폴리에스터 원사를 생산하는 첫 섬유 엔지니어라는 행운을 맞은 것이다.
1989년 창업 이래 그의 머릿속에는 무려 7600여종에 이르는 제품 설계가 각인돼 있다. 정리된 서류 없이도 주력 아이템에 대한 제조 방법이 줄줄이 나온다. 이는 섬유 소재, 사가공, 제직, 염색, 후가공에 이르기까지 경험했던 실무의 소산이다. 이 장인정신이 한때 한국 최고의 섬유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 생산라인 자동화 투자와 반장 직급은 모두 대학 섬유와 화공과 졸업 이상의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등 현장 인력 중심의 R&D에 강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냈다.박풍언 고문은 “회사가 잠시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이런 기업인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우수한 전문 기업인이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파카의 베트남 진출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이유다.■해외 생산기지로 베트남 낙점
박 고문은 올 8월까지 수차례 박 회장과 베트남을 방문해 최적의 공장입지와 현지 파트너를 물색해 왔다. 그는 “베트남은 봉제는 발전했지만 제직과 염색 및 가공 같은 중간재 산업은 미미하다. 뿐만 아니라 섬유산업이 니트에 편중된 구조여서 염·제직 산업이 진출한다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최고의 기술과 소재를 가진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면 그 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에 진출한 봉제기업들은 원자재의 85%를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섬유류 기업은 봉제를 위주로 호치민 1500개, 하노이 1000개 등 총 250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파카같은 염색과 제직을 주종으로 하는 선도 기업이 진출하면 중국산에 의존하는 현지 베트남 섬유산업 지형도를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단순 니트류 위주의 시장에서 글로벌 아웃도어 업체들이 선호하는 하이퀄리티의 우븐 염·가공 실력까지 보유한 파카의 현지 진출은 꽤 괜찮은 대안이 아닐 수 없다.베트남은 TPP를 계기로 동남아 섬유생산 중심 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파카가 베트남에서 염·제직의 수직계열화에 성공할 경우 주변 캄보디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같은 단순 봉제 위주 산업구조를 가진 주변국 오더를 단시간내에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제2의 창업으로 가는 길
지난 7월 중순 파카는 베트남 진출을 위해 현지의 유력한 섬유 대기업과 MOU를 맺었다. 이 회사는 올해 TPP 효과를 염두에 둔 홍콩의 모 상장 기업과 지분 양수도 계약을 맺는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파카가 진출하는 곳은 하노이 인근이다. 이 곳은 우븐 수요가 많아 파카 진출에 최적 입지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생산기지는 올해 안으로 월 200만야드/염색 캐퍼를 갖추고 내년 2월 상용생산 돌입이 목표다. 1차로 우븐 염색공장을 준공·가동한 후 2차에는 제직과 프린팅 설비까지 갖춰 월 400만 야드, 연 매출 2억 달러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한다.3차 투자는 니트 진출이다. 화섬 우븐·니트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초우량 멀티 염직물 업체로 거듭난다. 파카는 베트남 공장이 가동되더라도 충북 음성에 있는 공장은 향후 R&D 센터로 변신해 제품 개발의 전진기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생산 아이템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먼저 눈여겨 본 소재는 여성용 블라우스에 주로 쓰이는 감량물이다. 값싼 중국산 제품으로 수요가 몰리지만 차원이 다른 고가 감량물 시장을 열어 차별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저가에서 고가를 아우르는 폭넓은 니트소재 개발이다. 저가 니트 소재는 일반화 돼 있지만 여기에 하이 게이지 고급니트까지 개발해 수요선을 다변화할 생각이다. 국내에서는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손대지 못했던 안감 소재도 생산한다. 중국보다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 원가에 이점이 있는 베트남 생산 여건을 감안한 전략이다. 베트남 공장의 폐수 처리 용량을 최종적으로 5000t까지 늘린 이유다.박 고문은 “파카의 베트남 진출은 현지에 있는 한국계 봉제공장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니트 위주의 베트남 시장에 앞선 기술력의 우븐 염·제직 공장이 진출하면 상호 보완을 통해 양쪽 산업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파카의 베트남 진출은 국내 특히 대구지역 염가공업체들의 해외투자를 이끄는 선례가 된다”며 “해외 진출과 관련된 금융권의 협조·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섬유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듯 이제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를 맞아 한국 섬유가 달러 사냥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데 맥락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