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멀티테라피 공간으로
조닝 경계 허문 라이프스타일화 효과
2016-09-08 이원형 기자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은 명품, 화장품, 여성복, 남성복, 아동, 스포츠 등 확실한 경계로 나뉜 패션 정글이었다. 또 백화점 고객은 수십년간 지하 1층, 혹은 식당가 플로어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백화점이 180도 바뀌었다. 조닝경계를 허문 오픈형 MD부터 커피숍 혹은 뷰티 관리 공간까지 매장에 함께 구성하며 가족, 연인끼리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멀티테라피 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백화점의 변신에 업계는 상반된 분위기다. 유통 업계의 왕좌를 수성하고 있는 백화점이었지만 최근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로 인해 매출과 영향력이 옛날만 하지 못하다는 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모 패션브랜드 관계자는 “백화점의 변신에 입점 업체는 즐거움 반, 우려 반이다. 매장당 월 매출 평균이 좋지 않으면 당장에 백화점 측의 압박이 오기 때문에 더 좋은 상품을 준비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브랜드 홍보팀 과장은 “최근 백화점 트렌드가 전 매장 인테리어를 동일하게 진행하면서 화려한 인테리어로 시선을 사로잡던 업체들은 피해를 좀 봤을 것”이라며 “이제 더 이상 고객을 향한 눈속임은 통하지 않는다. 좋은 옷을 만드는 방법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 매머드급 백화점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900개의 브랜드, 국내에서 가장 큰 식품관 등 굵직한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단연 화두가 된건 조닝 경계를 없애고 전 층을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형태로 꾸며놓은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각 층마다 테마를 분명히 해 컨템포러리하면서도 하이엔드 감각을 살린 플로어 구성이 눈에 띄었다. 데님바와 같은 수입 데님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위화감 없이 고급스럽게 맞물렸다. 패밀리와 스포츠웨어 플로어였던 5층 야외 공간엔 패밀리 가든이 조성돼 온 가족이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순간을 마련했다. 6층 남성패션엔 바버샵과 같은 남성들의 비밀스런 공간은 물론 기존 매장에서 티와 커피를 파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매장 안에 들어가서 제품을 구매하기 부담스러웠던 고객은 물 흐르듯 유연하게 구성된 공간 덕분에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쇼핑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달 말, 강남점에 대규모 스트리트 패션존을 오픈한다. 그동안 대형유통점의 제도권 밖에 있었던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은 것은 이번이 첫 시도인만큼 많은 패션 관계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세계는 이미 소공동 본점에 유명 맛집과 맛보기 힘든 수입 디저트를 한 자리에 모은 식품관 구성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패션을 비롯한 전 플로어를 신세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구성과 MD로 새롭게 꾸며나갈 예정이다. 롯데백화점은 누구보다 신규 브랜드 창출에 애쓰는 유통점 중 하나다. 전국에 가장 탄탄한 고객층과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만큼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감성 찾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라인프렌즈와 무민, 뿌까, 구데타마 등 다양한 캐릭터 매장 겸 팝업스토어를 지속적으로 오픈하며 캐릭터시장의 새로운 활용법을 제시했다. 또한 잠실점에 지난 7월 새롭게 오픈한 영유니크는 실험작품이라 불릴만한 신규 브랜드를 대거 입점해 화제를 모았다. 저렴한 가격표를 무기로 삼은 브랜드가 많아 성공의 여부는 조금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