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물 들어올 때 노저어라
2016-09-11 정기창 기자
휴일인 지난 6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유력한 섬유패션 그룹사의 오너 기업인 B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약 2시간 반에 걸쳐 인터뷰가 이뤄졌지만 그는 최근 모 한국 섬유패션기업과 진행중인 합작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보도 유예를 요청했고 기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중국 수도인 베이징에서 그룹사를 이끌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정부와 연계된 각종 단체장을 맡고 있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부연도 그의 요청을 수락하게 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와 나눈 대화는 우리 기업인들이 한번쯤 음미해 볼 대목이 있다.“한국인은 일본, 유럽과 비교하면 열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일본은 품질은 좋지만 현재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아 기업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디자인도 한국만큼 다양하지 못하다. 유럽은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열정이 없고 게으르다고 느낀다. 한류와 더불어 최근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함에 따라 양국의 화해 무드에 크게 고무돼 한국 문화와 상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요즘 한국을 방문한 중국 기업인들을 만나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다.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일본과의 외교 경색과는 정반대로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와 선호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형국이다.최근 양국 관계 우호적 흐름의 흔적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최보영 명보섬유 회장은 중국 현지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섬유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흑룡강성 복장모자신발협회 왕리매 회장을 맞아 지난 8일 힐튼호텔에서 현지 기업인 약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 오찬을 가졌다.[한섬칼럼] 물 들어올 때 노저어라
朴대통령 방중…韓中 우호 관계 절정
한국 방문 中단체·기업인들 줄이어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 시동걸 때
?양국 섬유패션업계 상호발전 공감
中공략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키우자
왕 회장은 “2001년 첫 방문 이후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4번째”라며 “9월3일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양국간 우애가 깊어진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리뷰 인 서울(PIS)’ 전시 기간 당시 행사장을 방문한 중국 섬유패션 기업인들과도 이와 유사한 맥락의 대화를 나눴다.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방문을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을 둘러싼 세계 열강과의 외교관계 득실을 따지는 각계 각층의 여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이라면 정치적 논리를 떠나 양국간 화해 무드를 비즈니스와 연계시키는 냉정한 경영 판단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 업계와 기업인들은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정부는 박 대통령의 방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난 8월27~29일 사흘간 상하이 인텍스 전시장에서 한류상품박람회를 열었다. 국내 여성 패스트패션(SPA) 브랜드인 리얼코코는 이 행사를 계기로 처음으로 중국 진출의 물꼬를 텄다. 상담 이틀만에 중국 바이어로부터 130만불의 오더를 따냈다.여름철 노타이 옷에 맞는 넥타이 대용 액세서리 ‘버튼커버’ 생산 기업인 미크(MIK)는 중국 1위 캐주얼 의류 브랜드인 매터스 본위(maters bonwe)로부터 3500불의 테스트 오더를 받았다. 미크는 3개월간 시장 반응을 본 후 이 회사와 독점 라이센스 계약을 맺기로 했다.‘물들어올 때 노저어라’는 말이 있다. 물이 없을 때는 배의 바닥이 땅에 닿아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 않지만 물이 들어오면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배를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섬유패션업계가 양국 관계 개선의 큰 흐름을 타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이유다.민간의 후행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대통령 방중과 한류상품박람회로 거둔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갈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세계 생산공장에서 소비시장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은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지금 국내 섬유패션업계 경기는 한겨울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양국 관계가 최고조되고 있는 지금의 호시절을 남의 경사 구경하듯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올 하반기에라도 한류상품박람회가 아닌 ‘한국섬유패션박람회’ 정도는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