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산책로의 감나무"댕감"을 누가따는가…조능식
1999-10-14 한국섬유신문
▼빈 방에 홀로 앉았으면
나이먹어 감이 설어웁다.
(독좌비쌍빈=獨座悲雙髮)
이경(二更)-.
밖에서는 찬 비 내리고
(공당욕이경=空堂欲二更)
어디선지
과일 떨어지는 소리.
(우중산과락=雨中山果落)
……무엇일까?
풀벌레가 방안에
들어와 운다.
(등하초충명=燈下草蟲鳴)
▼중국의 시인 왕유(王維=699~762)의 「추야독좌(秋夜
獨坐=가을밤에 홀로 앉아)」라는 詩다.
누구나 나이 먹는 것을 슬퍼한다고는 하지만 그 슬픔이
「왕유」로 하여금 고요한 심경(心境)을 휘저어 놓치는
못했나 보다.
도리어 그 슬픔으로 하여금 <마음의 눈>은 더욱 맑아
져 자연의 미묘한 낌새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던 것같
다.
빈 방에 홀로 앉아 빗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고 있는
시인. 어디선지 들리는 듯 마는 듯 나는 소리가 <과일
>떨어지는 소리임을 알아차리기 위하여는 얼마나 마음
이 맑아져야 하는 것이겠는가……싶다.
왕유는 시 이외에도 <음악>에 정통했고 화가로서는 중
국 <남화(南畵)>의 원조로 존경받을 지경에까지 이르
렀다.
더구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올바른 교훈에 힘입은바 컷
다.
▼자연을 신뢰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멋(태도)을 풍류
(風流)라 한다면 그야말로 왕유는 <풍류시인>에 틀림
없으리라.
-그의 이 詩속에서 “풀벌레우는 소리”“비오는 소
리”“과일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라는 대목에서 문
득 생각나는 게 있다.
누구나 도시생활을 하다보면 흑냄새 나는 자연이 그리
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내에단 「산책로(散策路)」를 만들
고 화단을 꾸며 놓곤 나무와 꽃을 심어본다.
조금이나마 <콘크리트>상지속 같은 삭막함을 달래보자
는 자연적 동물인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에서다.
실타래子가 살고 있는 아파트내의 산책로를 낀 잔디밭
에는 여러가지 나무들틈에 끼어 「감나무」몇그루가 <
열매>를 맺고 서있었다.
9월 하순이라 감나무의 감은 아직도 덜익은 채로 푸른
색 그대로였지만 보기에 흐뭇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그전에 살던 집 뒷마당에 서있던 큰 감나무 생
각이 나서 “여보 저기 산책로 옆 감나무 서너그루에
감이 제법 주렁주렁 달려 있습디다-.
아직 <땡감>이지만…. 보기에 아주 좋던데-”했더니
“……그래서 아이놈들이 감을 따려고들 야단이지 뭐예
요-”하며 <노처>는 안타까워했다.
▼-몇일 후 오후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다. 젊은 아낙네
너댓명이 대여섯살 남짓한 어린 것들을 데리고서 그 감
나무밑에서 웅성대고 있지않은가?
“이 어찌된 일 인가보냐-”. 젊은 애엄마 하나가 그
가냘픈(이식한지 얼마안돼서)감나무 가지위에 올라가
땡감을 따고 있지않은가.
그 밑에선 너댓명의 젊은 엄마들이 “왼쪽이야 왼쪽!”
“좀 더 위야! 좀 더 윗쪽!”하고 성원(?)을 보내고 있
었다.
실타래子는 무지몰각(無知沒覺)한 그녀들이 몹시 가엾
어지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이것들 봐요-. 그 감들은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따서
뭘 하려고 야단들인가?.
더구나 어린 것들을 데리고서……. 당신네들의 지금하
고 있는 짓거리가 자식들 교육에 어떻게 미칠가를 생각
지 못하나? 참으로 딱한 일이구나…”.
-하고 큰 소리로 내질렀다.
▼몇일후 다시 그 산책로를 거닐게 됐다.
-생명력을 보는듯 했던 즐거움의 그 감나무의 <땡감>
들은 하나없었고 잔디밭에는 부러져나간 감나무가지가
무참히 나딩굴고 있었다.
그 가지에는 누렇게 시들어 붙은 잎새들이 바람에 하늘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