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왕서방의 군침, 패션·화장품 융합 ‘뷰티산업’
2017-01-06 정기창 기자
한국섬유신문이 있는 서교동 376번지 일대에서 요즘 중국인 관광버스가 자취를 감췄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침이면 관광버스들이 서교동 사거리에서 서교가든 사거리까지 약 100여m 편도 2차선 중 1차로를 점거해 매일 교통경찰이 나와 교통 정리를 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아침 출근길 주차해 있는 버스 매연을 마시고 좁은 인도를 가득 매운 중국인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을 들으며 출근하는 맛이란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 이랜드가 이들 유커(遊客)를 겨냥해 면세점 자리로 낙점했던 ‘서교 자이 갤러리’가 불과 100m 밖에 안떨어진 곳이니 그 북새통을 짐작할 만하다.그래도 이 일대 직장인들은 “한국을 먹여살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니 참아보자”며 기꺼이 조용한 일상의 아침을 그들에게 내 줬다. 그런데 이들이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계기는 작년 5월 메르스 사태였다. 메르스 사태가 전국화된 다음, 정말 거짓말처럼 그 많던 유커들은 서교동 일대 면세점 거리에서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 주로 화장품과 홍삼을 팔던 인근의 소규모 면세점들은 완전 울상이다. 아직도 유커 숫자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예전의 활황이 재현되기만 기다리고 있다.한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유커 발길이 끊기자 가장 큰 수혜를 보던 홍콩과 마카오의 경제가 급전직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홍콩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창궐하던 2003년보다 소매 판매액이 더 줄었고 마카오는 작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4.2% 줄었다고 한다. 모 언론 기사를 인용하면 유커들이 작년 한 해 외국에서 뿌린 돈은 1조2100억위안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215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 약 387조원의 56%에 맞먹는 셈이다.유커가 우리나라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패션쇼핑몰 집적지인 동대문만 봐도 중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과 내국인 매출 비중이 8:2까지 기울어져 있다. 예전에는 미국이 콧방귀를 뀌면 한국 경제는 감기에 걸린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중심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섬유패션산업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유커 발길 끊긴 서교동 면세점 거리
패션은 관광객 수요만 의존하면 안 돼
한·중 FTA는 새로운 기회 제공의 장
중국의 활발한 기업가 정신 부러워
선제적 대응으로 신시장 창출해야
작년 말 한·중 FTA가 발효됐다. 다행히 2015년내 발효 조건을 갖춤으로써 불과 열흘 사이에 관세는 두단계 낮춰졌고 우리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 여건은 더욱 나아졌다. 우리 섬유패션업계는 중국측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 당초 우려와 달리 “한번 해 볼만하다”는 전의도 불타오르고 있다.중국에서 유입되는 관광객 수요만으로는 전체 섬유패션 경기를 되살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화두는 중국 의류패션 소매 시장 진출이다. 작년 12월 중순 중국 출장길에서 만난 현지 기업인들의 언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청도시 인민 대표가 주최한 만찬 자리에서 만난 중국 기업인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산 의류는 20~30대들에 인기가 많다. 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2000~3000만원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다. 40~50대는 유럽 브랜드를 찾는다. 중산층은 한국 패션브랜드를 선호하지만 돈 있는 중장년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좋아 한다는 뜻이다.”이 기업인은 청도에 500㎡ 규모의 주일리샵 두개를 운영하는데 연 수입이 300만불에 달한다. 매출이 아닌 연 수입이 그렇다는 뜻이다. 당일 그는 페레가모 신발에 프라다 의류를 입고 만찬장에 참석했다. ‘중국 경기가 나빠지고 있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그래도 연 7% 성장 아닌가. 사실 중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의 체감경기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고 답했다.연 평균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 후반대로 내려왔다고 해도 13억 인구의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성장엔진이 식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중국 기업인들은 더 큰 의욕을 불태우며 내수와 수출 분야에서 신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시장은 화장품과 패션의류다. 청도 현지에서 만난 물류 기업 2곳의 오너는 약속이나 한듯이 화장품과 패션의류, 양대 품목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바로 한국 섬유패션기업들이 잘하는 분야다. 우리 기업들은 패션에서 나아가 화장품을 포함한 뷰티산업까지 합종연횡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중 FTA가 우리에게 新시장의 문을 열어 주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