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청상(靑孀)처럼 서글픈 계절아…조능식
1999-09-30 한국섬유신문
▼쌍그라니 선비의 베옷은 아청(鴉靑)하늘 아래 도루루
말리우고
흰 구름 송이 송이 봉우리
위에 성애처럼 차가울 때다.
을시년스런 마음
공연히 청상(靑孀)처럼
서글픈 계절아.
가을은-
장터에도 들었다
젊고 싱싱한 풋대추
팔월가위 비음하러 나왔네.
청산(靑山)보은(報恩)가시네야
올에는 비 온다 울지를 안했나
연두빛 고운 뺨이 불그레 수줍구나.
울고도 싶네 갖고도 싶네
보은(報恩)시악시처럼
사랑을 태우고도 싶네.
때아닌 그리움을 찾고도 싶네
비틀어라 쥐어짜도
시원치 않은 내 마음.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선생의 가을을 생각한다
는 「추사(秋思)」라는 시다.
10월은 가을이어 낙엽의 계절이다. 또한 국화의 향기가
싸늘하니 코끝으로 서리고 달은 휘영청 밝아 더욱 심란
해지기도 하는 때다.
화단의 해바라기 송이가 칙칙하게 시들고 가냘프게 뻗
어 휘어진 코스모스 가지들 새에 끼어 국화가 한창으로
핀다.
양지쪽으로만 날아드는 나비 그림자가 외롭고 풀숲에서
나는 벌레 소리가 시를 가리지 않고 물 쏟아지듯 요란
하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동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죄이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이 필려고
간 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선생의 「국화 옆에서」란 그
유명한 詩로 국화의 계절이면 누구나 읊조리게 된다.
▼동쪽 울 밑에 핀
국화를 따 들고
문득 고개 드니
눈 앞에 남산이 다가서 있다.
산 색은
해질 무렵 더욱 아름답고
날으는 새들은 서로 떼지어
집을 찾아 돌아온다.
이 속에야말로
진정 우리들 삶의 기쁨이 있다.
뭐라고 형언키 어려운.
중국 제일의 고사(高士) 도연명(陶淵明)의 「술을 마시
며」란 시의 한 귀절이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그의 탈속(脫俗
=속세를 초월)한 인품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 「가을」과 「달」과 「이별」과 「사랑」을
노래한 이태백(李太白)의 낭만을 더듬어 보자.
하늘에 달 있은지 그 몇 해던가.
잠시 잔을 멈추고 한 번 묻노니
사람이 뉘라서 저 달 잡으리.
제 도리어 사람을 따라옴을….
그제나 이제나
사람은 흐르는 물.
그들은 저 달 보며 무슨 시름 잠겼으랴.
원컨대 노래하며 술 마실 때
맑은 그 빛 황금 술통
길이 비쳐다오.
사랑이 가기 전에.
××× ×××
-내일 모래가 다시 찾아온 한가위 명절.
그러나 요즘 모두들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는 어려우면 우려울 때일수록 하늘높이 뻗어오르
고 옆으로 퍼져나가 <그늘>만들어 주는 <교목>되길
이 시점에서 새삼 다짐해야 할 것만 같다..
趙能植(本紙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