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안법 나비효과…쇼핑몰·봉제공장 다 죽는다
전안법 나비효과…쇼핑몰·봉제공장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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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에서 생산까지 모든 경제활동 파탄 우려
극한 상황 내몰린 봉제공장 품질표시 라벨에 임의적으로
KC마크 달아 의류공급 “불법이지만 먹고 살아야”

청평화시장에서 여성복 도매를 하는 김상철(가명·58) 사장은 지난 7일 오전 9시, 사무실로 출근해 전날 점포에서 판매된 제품을 점검했다. 잘 나가는 스타일을 추려 겨울 끝물을 타고 있는 여성용 점퍼 150장 생산을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공장에 작업지시를 내렸다. 이 옷은 다음날 바로 매장에 입고돼 판매에 들어갔다. 제품 생산 결정에서 판매까지 걸린 시간은 딱 사흘이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래도 장사가 좀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대뜸 화부터 냈다.

“시장 어려운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드(THAAD) 때문에 중국 바이어 발길도 뜸하고 그나마 내수는 온라인 사업자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안법 시행으로 이마저도 막히게 될 판이다. 옷 한 장 팔아서 몇 천원 남기기 일쑤인데 몇 만원에서 수십 만원에 이르는 검사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얘긴지 도통 답이 안 나온다. 죽어 가는 내수 시장은 어떻게 살릴 것이며….”

최근 ‘전안법’ 시행을 두고 시장이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상인들은 생존권 차원의 문제라며 격앙돼 있는 상태다. 전안법 시행으로 의무화된 KC인증 검사에 들어가는 돈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김 사장은 “시장은 짧게는 2~3일, 길어봐야 일주일이면 샘플에서 메인 생산까지 초스피드로 돌아가는데 검사소에서 4~5일간 물건을 잡아 두면 그 옷은 못 판다. 매번 샘플만 돌리다 장사 말아먹으란 이야기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도매 상가 상인은 “서울시가 제품 단속에 나서자 인터넷 업체들이 제품 구매를 꺼려 매출이 줄고 있다”며 “소비자에 좋은 제품을 위해 규정을 만드는 건 좋지만 (이것이 원인이 돼)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면 그게 법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전안법은 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봉제공장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창신동에서 여성 토탈 의류를 생산하는 모 봉제공장 사장은 “우리 공장은 온라인 사업자 매출이 대부분인데 전안법이 시행돼 국가나 지자체에서 검사 나오면 바로 공장을 세워야 한다. 일대 모든 공장은 올 스톱(all stop) 된다”고 말했다. 영세 소규모 사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동대문 및 봉제 밀집 지역은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경제 활동이 파탄을 맞게 된다는 뜻이다.

일부 공장은 법을 어기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모 봉제 공장 사장은 “작년부터 업체들 요구로 품질표시 라벨에 임의적으로 KC마크를 달아 공급하고 있다”며 “원단이 바뀔 때 마다 허가 받는 다는 건 꿈도 못 꾼다. 불법인줄 알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각 시험기관 문을 두드리며 대안 마련에 들어간 곳도 있다. 실제 검사 업무를 시행하는 한국의류시험연구원 관계자는 “올 들어 문의 전화가 많아졌고 동대문에서 시험검사를 의뢰하는 양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상인들은 막대한 검사비용에 애로를 겪고 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따르면 가장 단순한 여름용 단색 무지 티셔츠의 경우 건당 약 6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프린트나 배색이 추가되면 약 10만원대 초반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겨울용 의류 경우는 워낙 다양한 소재와 컬러를 함께 쓰기 때문이 이 비용이 수십 만원대에 달한다.

소상공인들 우려가 커지면서 국회차원에서도 대응책이 모색되고 있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한국패션산업그린포럼이 주최하고 소상공인연구원 주관으로 ‘전안법 시행에 대한 대안 모색 간담회’가 열렸다. 이어 9일에는 ‘전기안전법 논란, 끝장 토론’이 열려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6일 간담회에서 소상공인연구원 측은 “전안법 폐지를 바라지만 현실상 폐지가 어렵다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동대문 밑바닥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반영해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행사를 주최한 전순옥 전 의원은 “정부는 전안법에 대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고 심지어 국회 상임위원들에게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간담회에 나온 의견들을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들과 논의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전안법 재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9일 토론회에서는 국가기술표준원 및 (사)한국병행수입업협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등 관련단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 마련을 위한 패널 토론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의류산업협회 이재길 부장은 “아동용 같은 민감한 품목이 아닌 성인용 의류제품에 대해서는 강제보다는 자율·개선·권고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염색 제품의 경우 공급업체가 인증을 받아 제공하면 판매자들 의무를 경감시켜주는 방안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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