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상존
위험에만 집중하면 기회 놓칠 수 있어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나서고
기업은 고용유지에 최선을 다하라
2019년 섬유패션업계 70개 상장기업 결산보고서가 발표됐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58원을 손에 쥐었다. 매출은 전년대비 3.3% 늘어난 35조3457억원 턱걸이 성장에 그쳤다. 그러나 22개 기업은 적자가 지속됐고 이중 8곳은 적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52시간제 시행, 내수불황과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수출경기 악화로 이어져 업계에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효성티앤씨 영원무역 한세실업 휠라홀딩스 등 대기업이 성장을 주도하면서 중소기업 입지는 약화된 반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패션부문은 휠라홀딩스 등 최상위 5개사 매출이 패션업종 전체의 54.3%인 9조5700억원에 달했고 영업이익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금은 지난 IMF때만큼이나 어려운 시기다. 미국의 실업률은 그래프 밖으로 뛰쳐나왔다. 지난달 21일 330만명이었던 실업자가 일주일 후인 28일에는 660만명으로 두배 늘었다. 평균 실업률이 그동안 20~30만명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마치 1929년 세계 대공황 당시를 연상시킨다. 국내 고용유지지원 신청건수도 작년의 26배에 달하는 4만건이 접수됐다.
정부는 기업이 감원하면 경제 회복이 더뎌진다고 고용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한다. 대한항공은 6개월 동안 국내 근무 직원 중 70% 넘는 인원이 유급휴직을 실시하기로 했고 패션업계 모 회사는 직원에게 전화로 면담요청 후 20여명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았다.
국내외 경제상황은 비상시국이다. 기존에 발생했던 경제 위기와는 다르다. 이전 위기들은 통화 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합으로 대부분 해결됐다. 시간 싸움일 뿐 돈을 풀면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은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근 ‘일상의 마비’로 실물경제에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3월말 맥킨지에서 발간한 ‘세계 경제 파급 시나리오’ 보고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붕괴’와 ‘유가폭락’으로 보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하면서 공장 생산이 멈춘다. 유가 폭락은 미국 중동 등 산유국들을 더 큰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위기엔 위험과 기회가 상존한다. 무엇을 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위기관리는 위험에 대비하고 숨겨진 기회를 찾고 활용하는 것이다. 위험에 집중하다 보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세실업은 1995년 매출 200억 수준에서 작년 2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니카라과 법인을 설립(현재 3만평, 3700명)했다. 당시 많은 섬유기업들이 해외 수출로 벌어들인 여유자금을 부동산 매입에 썼으나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는 거의 대부분 수익을 해외 공장 설립에 투자했다.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효성티앤씨는 작년 매출 5.2% 성장한 3조415억원, 영업이익은 71.6% 급성장했다. ‘크레오라’는 1990년대 초 수 차례 시행착오 끝에 국내기업 최초로 개발되었고 이후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 고객마케팅을 통해 세계 1위 제품이 되었다. 기술중심 경영을 앞세우면서 3년만에 영업이익 ‘1조클럽’에 복귀했다.
매출규모가 큰 기업이 성장을 주도하면서 중소기업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이들 적자 기업은 모두 매출이 3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이었다. 각 기업의 변화 노력이 필수임에는 틀림없지만 중소기업은 결국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작년 산업통상자원부가 ‘AI 등 ICT를 활용한 섬유패션산업 활성화 방안’을 제안했다. 산업의 창조적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산업의 융합을 목표로 산업 전반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ICT가 섬유와 결합하면 패션섬유강국으로 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계획의 청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해서 진정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맥킨지가 제안하는 코로나 위기 대응 리스트 중 눈에 띄는 것은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조기에 극복하고 기업과 우리 경제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사가 힘을 합쳐 최대한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향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고용을 유지한 상태에서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 게 녹녹치 않다. 정부가 앞장서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고 섬유패션 관련 협회나 연구소들이 제 역할과 본분을 다한다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産·官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