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취향 추천이 곧 친구 대화
공유문화 갈수록 세분화되는 MZ세대
“주중에 메일로 받은 출판사 마티 뉴스레터를 읽고 주말에 집콕으로 트와이닝스 그랜드 웨딩 티를 마시며 커티스 풀러의 재즈를 듣고 마티의 신간 ‘젊고 아픈 여자들’을 읽었어요.”이재영(가명·31)
“넷플릭스나 OTT가 추천한 컨텐츠를 당장 지금 보지 않고 ‘찜’해두기만 해도 내 취향을 수집하는 느낌이 들어요.” 조희령(29)
한 플랫폼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시간 낭비 없이 충분히 ‘디깅(Digging,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을 깊게 파는 행위)’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오프라인 문화 생활이 어려워진 MZ세대들은 온라인 문화 생활에 접속했다. 밖에 나갈 수 없어 ‘집콕’하며 볼 거리, 즐길거리를 찾아 다녔다.
OTT, 음악 어플 등 알고리즘 기반 추천 서비스는 내가 굳이 매번 검색하지 않아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다른 사용자가 좋아하는’ 컨텐츠를 연달아 추천한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플랫폼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추천받으며 구독 한 번으로 문화적 취향을 손쉽게 발전시킨다.
한 달에 한 번 동네서점 북토크에 참석할 정도로 책 관련 문화 생활을 즐겼던 이재영씨는 트레바리, 출판사 북클럽 등 오프라인 멤버십을 모두 탈퇴하고 온라인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를 구독하고 있다. 마티의 각주는 인문예술 출판사 마티가 발행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막 출간한 책의 홍보글이 아닌 책을 만드는 진행 과정과 영감을 준 음악 플레이리스트, 책을 작업했던 카페, 주말에 다녀온 전시회 등을 5명의 구성원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적어 2주에 한 번 구독자에게 보낸다.
이재영씨는 “원래는 마티에서 나오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였다”며 “마티의 각주를 구독하며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의 구성원들이 결국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소규모 출판사인 마티는 각 잡힌 마케팅 창구로서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보다 독자와 친근한 소통 창구로써 뉴스레터에 접근했다. 마티 편집인 정희경씨는 “소규모 출판사라 따로 담당자가 없다. 원고를 교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5명의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넓고 깊은 컨텐츠가 담기는 것 같다”며 “구독자들이 ‘해외 여행에서 사온 책’ 등 구성원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신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조희령씨는 코로나 확산 이후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다. “밀폐 공간에서 문화생활을 하다가 직장 동료나 가족에게 옮길 수 있으니 꺼리게 된다. 지난 2년 동안 극장에 딱 한 번 갔다”고 말했다. 그는 OTT 서비스만 세 개(왓챠, 넷플릭스, 티빙)를 구독하며 문화생활을 대신하고 있다. “왓챠는 영화 보려고, 넷플릭스는 심심할 때 킬링타임(killing time, 시간 때우기) 시리즈 보려고, 티빙에서는 사회생활 하려고 예능을 챙겨 본다”고 말했다.
조희령씨는 “얼마 전 왓챠 알고리즘이 추천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봤다. 신작 위주의 극장에서는 못 봤을 영화인데, 우연히 보게 된 후 왕가위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게 됐다”라며 넓은 선택폭과 접근성을 OTT의 장점으로 말했다. 덧붙여 “영화관에 가려면 단 몇 편의 영화 중에 하나를 골라야할 뿐만 아니라 시간, 장소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OTT에서 언제 어디서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영화관의 선택지가 더욱 좁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이수현(28)씨는 뉴스레터 ‘뉴닉’을 구독하며 세계의 흐름을 따라간다. 뉴닉은 한 이슈에 관한 뉴스를 종합해 젊은 세대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친구에게 설명하듯 친근한 말투와 쉬운 설명이 특징으로 MZ세대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수현씨는 취업 준비생 시사 ‘스터디’에 가입하는 대신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뉴스레터 서비스로 생각을 정리한다.
“매일 메일로 배달되는 뉴닉 뉴스레터 서비스는 이슈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뉴스를 대신 읽어주는 느낌이다”라며 “지나간 이슈라도 소식을 업데이트 해주고 갈무리해서 사안을 정리해주니 놓쳤던 흐름을 다시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OTT, 유튜브 등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취향이 세분화되고 다양해졌다. 또래 집단 안에서도 보는 컨텐츠와 관심사가 다양해져 또래 대화 소재가 달라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또래 집단 안에서도 공유하는 문화 지식 등이 적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모두가 사랑하는 대중 문화가 발달하기 보다 각자 취향과 정체성은 다양해지고 개인 생활과 생각은 세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