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광선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 블랙. 가시광선 너머 적외선 영역까지 흡수하는 가장 따뜻한 색이지만 열사의 사막에서 입는 로브의 색도 검정이다. 정의를 집행하는 판사의 법복도, 반대편에 서 있는 마피아 대부의 수트도 검은 색이다. 악마의 상징도 성직자 신부의 사제복도 검다. 검은색은 더 검을수록 가치가 높다. 빛의 99.9%를 흡수하는 세상에서 가장 까만 두가지색은 Black 3.0 과 Vanta black이다. 가시광선의 모든 빛을 흡수하면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을 보는 것과 같다.
섬유의 염색은 가죽 염색과 더불어 대표적인 공해산업이다. 과다한 염료 사용과 원단 중량의 100배에 달하는 수자원의 남용. 그보다 100배는 더 되는 하천과 바다의 오염을 일으키는 주체이다. 특히, 블랙 컬러는 그중 최악이다.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가장 깊고 어두운 까만 색을 만들기 위해 염색공장은 일반 컬러의 2~3배에 달하는 염료를 투여하며 대량의 물을 사용하고 따라서 막대한 오 폐수를 배출한다. 그러면서도 세탁 견뢰도는 가장 나쁘다.
서스테이너블리티(Sustainability) 라는 쓰나미가 시시각각 다가옴에 따라 염색산업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패션 브랜드는 공해 산업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낙인이 갑자기 찍히게 될 지도 모른다. 원단의 착색을 위해 170년간 지속되어왔던 합성염료를 사용한 염색산업과 그에 수반된 모든 화학공업을 단기간에 전환할 수 있을까. 궁극의 해결책은 화학 염색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지만 일시적인 대책으로 최소한의 물을 사용하거나 아예 물을 사용하지 않는 염색, 원단의 한쪽면만 착색하는 방법이나 화학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착색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블랙은 구제불능으로 보인다.
품위 담긴 블랙 대체할 ‘청정블랙’
문제는 블랙 컬러가 빠진 패션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추동 시즌에는 컬러 어소트(Color Assortment)의 최소 30%는 검은색이다. 블랙(Black)은 무겁고 따뜻하며 웅장하고 카리스마가 있다. 신비한 아우라가 있고 청빈한 느낌을 주면서도 숭고하며 신성한 이미지를 풍긴다. 샤넬은 제품 포장이나 판매원들의 유니폼 컬러로 블랙을 선택했다. 블랙에 고귀한 품위도 담겨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아예 무채색인 블랙만으로 의류를 설계하는 브랜드도 있다. 안타깝게도 블랙은 환경에 최악의 해를 끼치는 주범이다. 그런 블랙을 때묻지 않은 순결한 색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것이 있다! 획기적이고 의문의 여지없으며 즉시 적용 가능한 한가지 방법이 바로 청정블랙(CleanBlack)이다.
‘청정블랙CleanBlack’의 이점은 다음과 같다. ▲염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천연이든 합성이든 ▲물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다 ▲화학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수질 오염이나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세탁 후 이염이나 번짐이 전혀 없다 ▲자외선이나 잦은 세탁에 의한 퇴색·변색이 없다 ▲모든 견뢰도에서 최고 등급이다 ▲중저가 브랜드가 충분히 수용 가능한 가격이다.
미래의 염색이며 서스테이너블리티(Sustainability) 시대를 관통하는 최적의 착색 방법이다. 청정블랙 한가지 만으로 청정 그레이(Grey) 도 만들 수 있다. 경위사 한쪽만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은 있다. 청정블랙의 착색은 원단이나 원사가 아닌 고분자Polymer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즉, 화섬 원단만 가능하다. 블랙 뿐만 아니라 모든 청정 컬러가 가능하지만 소재의 초기 단계에 적용되기 때문에 생산 미니멈(minimum)이 커서 블랙 외는 납기가 한 두 달 정도 더 소요된다.
굳이 컬러 어소트를 갖추고 싶다면 자주 사용하는 몇 가지 청정 컬러로 한 두 달 전에 기획 생산하면 된다. 다른 컬러들은 일반 염색으로 하고 검은색만 ‘청정블랙’ 으로 설계해도 문제없다. 원래 서스테이너블리티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성이나 파괴력은 컬러별로 다르다. 5% 오가닉 코튼(Organic cotton)도 나름 의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스테이너블리티가 지배하는 새로운 패션 패러다임 아래에서 기존의 질서와 프로토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 없다.” 라는 플라톤의 말처럼 어떤 변칙을 사용하든 어떤 기능을 상실하든 결과가 서스테이너블리티에 수렴한다면 그것이 최선의 원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