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 시대, 기존 마케팅 안 통해
별다꾸 ‘MZ’, 기성품에 커스텀 더한다
컨셉·스토리 있는 개인이 바로 ‘브랜드’
우리는 지금 브랜드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나 제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브랜드 파워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을 포함한 대부분 기업이 자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브랜드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았을까? 조선시대 유명했던 브랜드 3개만 말해보라. 고종황제가 즐겨 입었던 곤룡포나 명성황후가 주로 타고 다니던 가마의 브랜드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는가?. 외국도 비슷하다. 나폴레옹의 망토와 모자, 엘리자베스 1세의 화려한 드레스는 무슨 브랜드였던가? 산업혁명 이전에는 나폴리 피자, 순창 고추장, 공부가 주 같이 유명한 장인이나 지역을 이름으로 붙였지, 별다른 브랜드란 것이 없었다.
2008년 캐나다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의 칼 무어(Karl Moore) 교수는 ‘브랜드의 기원(The birth of brand)’이라는 논문에서 브랜드의 기원을 4270년 전인 BC 2250년경으로 제시하고, 옛 노르웨이말로 ‘불로 달구어 지지다(brandr)’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가축에 인두로 지져 식별한 행위를 ‘브랜드’했다는 근거로 삼는다.
어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대적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전기에너지의 등장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혁명 이후이다. 잉여(과잉) 생산된 상품들이 운송 수단의 발달과 라디오나 TV 같은 매체를 타고 전 세계에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상품에 ‘브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또한 매출을 올리고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이 만든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한다. 더욱이 인터넷과 개인 미디어의 혁신 같은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기업의 브랜딩 및 마케팅은 기업의 거의 모든 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야 말로 20세기 이후 산업화 사회가 만든 가장 큰 산출물의 하나이다.
기성품 세상에서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는 철저히 공급자인 기업 중심이다. 기업은 많은 공을 들여 미리 만들어 놓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기업들은 더 좋은 기술과 디자인, 더 나은 품질, 더 싼 가격 등으로 서로 경쟁하며,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다. 또한 산업화 사회의 브랜드는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개개의 소비자들은 대중(mass)으로 여겨진다. 결국 대중들은 유사한 상품들을 이용하며, 브랜드의 위상을 자신들의 위상으로 여기며 자랑한다. 그래서 대중들은 같은 아이폰을 쓰고, 메르세데스를 타고, 나이키를 신는다. 심지어는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이나 병을 치료하는 병원들도 브랜드 전국 순위를 매기며 경쟁한다.
이런 브랜드의 개념이 오늘날 급속히 바뀌고 있다. 개인 미디어 장치와 무선통신, 그리고 SNS의 등장은 공급자인 기업이 중심인 세상을 소비자인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업이 만들고 대중은 이용한다”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에서 복원된 “개인들이 만들고 개인들이 이용한다”라는 산업화 이전의 방식이 되살아난 것이다.
에어비앤비에는 힐튼이나 메리어트 같은 브랜드 호텔은 없다. 그저 지역별로 개인들의 이름을 딴 호스트만 있을 뿐이다. 미디어 콘텐츠는 이미 공급자인 공중파나 유선방송국의 전유물에서 개인 유튜버들로 옮겨간 지 오래다. 여기에도 브랜드는 사라지고, 그저 인플루언서들의 이름만 있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이 줄 서는 맛집의 대부분은 기성 브랜드의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그저 셰프(chef)의 존재감과 스토리가 있는 골목의 아담한 맛집들이다. 심지어 편의점에 가도 하이네켄이나 아사히 같은 브랜드 맥주 옆에는 듣도 보지도 못한 동네 맥주들이 즐비하다. MZ 세대들은 기성품에도 각자 열심히 ‘별다꾸(별걸 다 꾸미는)’ 같은 커스텀을 하고, 크록스 (Crocs) 슬리퍼에는 별별 지비츠(Jibbitz)로 자신들을 뽐낸다.
여전히 훌륭한 기업에 들어가 대중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 파워를 올리는 일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화를 뛰어넘어 다시 예전처럼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다. 컨셉 있고 스토리 있는 나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은 훨씬 더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