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름도 생소한 법이 등장했다.
공급망실사법? 그와 함께 ESG가 또 한번 출렁인다. 2023년 3월 어느 날. EU 상주대표회의는 EU 권역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에게 인권 및 환경 보호를 위한 실사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공급망 실사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 이하 ‘공급망실사지침’)을 통과시켰다.
공급망실사지침 원안의 적용대상보다 그 범위를 대폭 축소한 수정안이 상주대표회의에서 승인된 후, 2024년 5월 EU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2, 3년 내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유럽에 이미 진출한 패션기업들은 물론 향후 유럽 진출을 노리는 모든 패션사업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ESG의 돌풍은 이렇게 거세고도 집요하다.
공급망 실사지침은 말 그대로 기업이 제조하는 제품의 공급망에 대한 실사 의무를 ESG의 방향에 따라 대폭 강화하는 강제규범이다. 즉, 기업 스스로 기업경영 활동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실제적·잠재적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식별·예방·완화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공급망 실사지침은 직원수가 1000명이 넘고 전 세계 순매출액(전년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EU기업 및 그 모기업과 EU 역내 순매출액(전전년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 및 그 모기업에 적용된다. 적용시기는 기업규모에 따라 다르다.
대규모 기업(직원수 5000명 초과, 순매출액 15억 유로 초과인 역내 기업 및 순매출액 15억 유로 초과 역외 기업)은 발효 후 2년 내 국내법부터 시행해야 하며, 그보다 규모가 적은 기업은 4, 5년 안에 본 지침을 적용한다.
모든 산업에 적용되지만, 특히 EU는 패션섬유산업을 고위험산업군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고강도의 감사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원료생산 조건이 한정적인 만큼 섬유제품은 수입의존도가 높다. 역내 소비되는 섬유제품의 20~30%만이 역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70~80%를 역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그만큼, 역외국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수입 제품에 대한 규제가 공급망실사지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EU의 섬유제품 수입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총 1060억 유로의 수입액 중에서 대중국 수입이 전체의 1/3을 차지하며, 방글라데시, 터키,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순으로 수입량이 높다. 우리의 패션기업들의 수입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므로 공급망실사지침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침의 적용대상 기업은 (i) 실사의무의 내재화(실사정책 수립 등), (ii) 부정적 영향의 확인, 평가, 우선순위 지정, (iii) 잠재하는 부정적 영향의 예방·완화 및 실제하는 부정적 영향의 제거·최소화, (iv) 불만접수 절차 구축, (v) 모니터링, (vi) 공중과의 소통(공시 등)의 의무를 부담한다. 공시의무의 시행 시기는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으나, 2029년부터는 모든 기업이 공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아울러, 실사 대상 공급망의 범위는 자사, 자회사, 활동망 내의 직접적, 간접적 비즈니스 파트너까지 넓히고 있다. “직접적, 간접적 비즈니스 파트너”는 기업의 공급망에서 업스트림 및 다운스트림에 속하는 일부 업무(distribution, transport, storage, disposal)를 수행하는 직접 계약 당사자 및 간접 공급자를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지침 위반시 제재가 다른 지침들에 비하여 무척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침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자구책으로 보인다. 각국이 지침 위반에 따른 과징금의 최대한도를 과징금 부과 직전년도 전 세계 순매출액의 5%를 초과하여 규정해야 하며. 인권과 환경에 대한 침해 정도, 지침상 실사의무의 이행 정도를 고려한다.
나아가, 피해자는 지침 위반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노동조합, NGO 등의 집단소송 공익소송 등의 허용 여부는 국내법 제정시 각국의 선택이지만, 공익을 추구하는 ESG의 특성상 넓은 범위로 확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고위험군 패션기업은 그만큼 고위험의 늪에 빠진 셈이다.
공급망실사지침은 대기업에게만 닥친 문제가 아니다. 사업 타겟에 유럽이 없다고 방심할 수 없다. 직접 적용대상 기업뿐만 아니라 그 적용대상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도 실사지침을 준수해야 하므로 소규모의 패션사업자들도 지침상 의무 이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더구나 공급망 지역은 중국을 비롯하여 아시아권역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결국 모두가 신경을 곤두서야 한다. 더 걱정스러울 상황은 앞으로 닥칠 것이다.
EU에서 시작된 공급망실사의 돌풍은 유럽에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패션기업의 타겟인 미주, 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공급망실사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다.
30일이 넘는 열대야와 폭염 속에 모두가 지쳐있다. 그만큼 기후의 역습을 온 몸으로 느끼는 만큼 오늘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준비 과정은 결국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는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다. 더 늦기 전에 깨닫고 더 깨지기 전에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