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서구문명은 문명화의 척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것은 부의 축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제국주의를 주도하던 유럽은 현재 주도권을 미국과 중국에 빼앗겨 버렸고, 중국의 경제적 성장으로 세계경제의 주도권도 누가 잡을지 알 수 없는 시대다. 일부 사람들은 유럽이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환경문제와 인권을 강조하며 ESG라는 개념을 제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ESG가 산업발전이 가져온 기후문제와 이윤추구 중심의 자본주의, 인권의 향상 등의 문제로 촉발되었으니 서유럽에서 시작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현재 문화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에서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서유럽의 기준을 쫓아가야 하는 상황은 인정하기 어렵다.
ESG에 관련된 규정은 대부분 유럽연합에서 결정한다. 유럽과 거래하길 원하는 국가는 그 규정을 따라야만 한다. 수출이 중심인 우리나라도 주요 수출국, 특히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등의 ESG와 관련된 각종 규정과 제도 발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ESG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기후위기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직간접 지원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은 대규모 인명 살상과 자연 파괴를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빈부 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었던 유럽에서조차 예상과 다른 결과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이 오로지 ‘이윤’이었던 시대에서, 이윤 이외에도 윤리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제 경제체제에 반영된 것은 인류사의 진일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업활동에 제재가 되는 ESG 경영을 반대하는 주장도 강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평가에 비재무적 평가를 투자의 지표로 삼는 것이 타당하지 않고 ESG가 아니라도 기업의 탈탄소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글로벌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ESG가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고, 실제 미국 기업의 지속가능 투자 규모 증가가 미국 이외의 국가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윤’은 ESG 경영과 투자를 지속시키는 필요조건이다. 수익이 감소하는 기업이 ESG 경영을 지속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경제 기조가 ESG에 역행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고물가의 지속, 경기 침체, 전쟁으로 인한 화석연료 기업들의 호조세 때문이다. 최근에는 ESG를 주도했던 투자사들이 예상했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신규 ESG 펀드도 감소하는 등 ESG 자금의 이탈도 심해지고 있다. 사회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은 기후변화와 불평등, 빈곤 등 사회문제를 강조하는 ESG를 진보진영의 투쟁 이슈화 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ESG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아예 무시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ESG 관련 법안은 잇따라 발의되고 있으나 상임위의 법안 심의로 넘어간 경우는 매우 드물다. ESG 법안의 대상은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의 요청으로 금융기관의 자금을 활용하는 기업은 ESG 경영을 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 정책에 직접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대기업은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의 정책에 맞춰 경영기조를 조정한다. 대기업도 아니고, 첨단 산업도 아닌 우리나라 패션기업은 ESG 경영을 해야 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특히 ESG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현재 상황은 국내 기업의 ESG 경영 의지를 더욱 약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ESG에 긍정적이다. 물론 현 정부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권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직 실제 패션 유통에서 ESG의 영향은 미비하지만 앞으로는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지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에서 의류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패션기업의 ESG 대응 준비는 현재 대단히 미흡하다. 매체들을 통해 발표되는 브랜드의 ESG관련 기사들도 대부분 그린워싱이다.
전쟁은 반드시 끝날 것이다. 그리고 기후이상은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여러 이유로 유럽의 ESG는 견고하게 추진될 것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국가들도 ESG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공멸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SPR의 의류 폐기 금지 조항이 패션산업의 미래에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아직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진전이 없다. DPP의 사용도 의무화될 것이 뻔한데 기업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정책이 정해지면 일단 따르고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일단 ESG에 관련된 정부 정책이 시행되면 변화가 있을 것도 같은데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ESG 공시 국제 표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ISSB 공시기준 발표에 떠밀려 올해 4월 22일 우리나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공시기준 초안’도 언제 시행될지 알 수 없다.
패션산업은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같이한다. 미래도 패션산업은 계속될 것이다. 유럽이 글로벌 주도권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ESG를 하건 말건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기후위기와 인권과 공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패션산업의 ESG도 글로벌 경제 이슈와 상관없이 우리의 기준을 만들고 발전시켜야 한다. 요즘 국내 패션산업의 매출을 보면 우리나라의 유력한 패션기업조차 존폐의 위기가 느껴진다. 이 상황에 기후위기가 대수며 ESG는 어따 쓰겠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이성이 발전하는 과정이다. 이성의 발전은 세상을 점점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후위기와 전쟁도 반드시 해결할 것이다. ESG가 아니라도 ESG의 개념은 살아 숨 쉬고 성장하고 있다. ESG는 ESG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