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3)]  코로나 계기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명성 되찾는다
[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3)]  코로나 계기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명성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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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켓·바지·스커트에서 스니커즈·레깅스로 소비성향 변화

지난 2개월 동안 필자가 가끔 해오던 생각이 있다. 만약 지금이 어느 누구도 코로나19를 알지 못하는 2020년의 5월이었다면 크루즈 컬렉션 기간이니만큼 명품 브랜드들은 세계를 누비며 새로울 것도 없는 아이디어를 포장해 줄 극적인 스토리와 룩북, 백스테이지 컷을 소셜 미디어에 몇 시간마다 업데이트 하면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5월에 시작되는 패션 사이클은 빠르면 11월경 이미 봄 내음을 풍기며 패션 샵 쇼윈도우에 내걸리고, 막 겨울 코트를 꺼내 입은 소비즈들이 또 다시 다가올 봄 옷을 바라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상품이 매시즌마다 앞당겨 찾아옴으로써 패션이라는 거대한 이름은 늘 그렇듯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며 한없이 무거운 챗바퀴 속을 달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거의 모든 지구인은 지금 코로나19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동안 누려온 편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잠시 뒤로한 채,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불편함에 점점 적응해 나가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일상을 멈추어야 했던 시간 동안 잠시나마 모든 것을 되돌아보는 작은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우려 그리고 비전에 대한 복합적이고 끊임없는 고민들이었다. 

이탈리아는 관광과 패션산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많은 관계로 폐쇄되었던 국경을 오픈하고 산업체를 재가동하는 시점을 두고 정부와 산업체 사이에 민감한 의견 충돌이 빈번히 있어 왔다. 5월 중순 이후로 거의 모든 비상사태가 끝나고 멈춰있던 시스템의 신속한 재가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특히 재 오픈된 사무실로 돌아온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다음 시즌 메인 컬렉션을 위해 바쁘기 움직이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지속적으로 바이어들을 컨택 해온 세일즈팀과 컬렉션 판매 시작점을 타진하는 사이 프로덕션 매니저는 각종 생산라인과 타이밍을 맞춰 나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사회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이미 그들의 예상은 패션업계 각 분야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다음 컬렉션은 어떤 방향으로 그 윤곽이 잡히게 될까?

세계 전반에서 약 30%의 매출 손실을 점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둔 크고 작은 예상과 전략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문가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까다로워진 여행과 유통 조건을 감안해 이탈리아 내 로컬 생산량의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넘쳐나는 의류 유통량을 줄이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바람과 맞물리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셧다운 이후 패션 브랜드를 둘러싼 각종 생산업체, 쇼룸, 샵 그리고 이 커머스에서는 이전부터 이어져 온 패션 산업의 포화상태가 사실상 가시화되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겪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보여주며 즐기는 룩보다는 건강과 웰빙, 자유로움 같이 스스로의 본질적 행태를 갈망하게 됨에 따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은 이전보다 훨씬 본질적인 성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자켓과 그에 맞출 바지나 스커트를 구입하기 보다는 스니커즈와 기능성을 갖춘 레깅스를 선호하는 경향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상거래, 원격의료시스템 및 자동화분야에서 이미 증명됐듯 전세계의 패션 시장에서도 디지털 온라인 유동 같이 비접촉 경제의 가속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의 4월 온라인 구매자들 중 13%가 온라인숍을 처음 이용해 본 사람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매출 상승의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소비자의 구매 행태와 관심을 표출하는 방식 등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프트웨어의 진화도 관심을 끌고 있다. 더 패브리컨트(The Fabricant)와 같이 3차원으로 옷의 움직임과 디테일까지 보여주는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고 있는 디지털 룩북 방식은 이미 그 시장을 넓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방식으로 실제 샘플을 제작하는데 소재 낭비를 덜어주고 소비자가 가상 현실에서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런던 패션위크는 6월 12~14일까지 2021년 춘하복컬렉션을 온라인으로 우선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밀라노에서도 이미 여러 브랜드들이 계획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올해 110주년을 맞는 에르메네 질도 제냐(Ermene Gildo Zegna)도 7월 중 ‘Ermene Gildo Zegna XXX Estate’라는 프로젝트를 디지털 포맷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냐 측은 지금이야말로 가까운 미래를 다른 각도로 내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다며 새로운 디지털 방식 도입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브랜드의 결정은 밀라노 패션협회가 6월에 있을 남성복 주간을 9월의 여성복 패션 위크와 합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패션 프로그램을 회복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읽힌다. 

이런 디지털 소통방식은 공식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9월로 미뤄진 패션계에서도 7월 경이면 세계 곳곳에 있는 바이어들에게 2021년 여름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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