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질서 무너지고 판로까지 막혀 대금 받을 길 막막
#금천구의 봉제업체 A사는 3월경 유통업체 B사에 마스크 14만장을 납품했는데 석달이 지난 지금까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장당 납품가는 300원, 못 받은 공임이 총 4200만원이다. 그는 “연로하신 어머니께 수천만원을 빌려 협력업체들에 먼저 결제를 해 줬다. B사에 하소연하니 법적으로 하라더라. 잠도 못 자고 피가 마른다.”
방호복 공임 미지급 사태에 이어 마스크 봉제업체들도 같은 문제로 위기에 놓였다. 파악된 사례만 10억원이 넘는 규모다. 서울 중구 광희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모 대표는 “4월말까지 약 6만여장을 납품했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돈을 못 받고 있다”며 “근처 다수의 봉제공장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대문패션봉제연합회 김충기 회장은 “지금까지 수십건의 사례가 접수됐다”며 “동대문구에만 마스크를 납품하고 못 받은 돈이 2억여원, 물량으로는 70만장이 넘는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4~5명이 함께 일하는 공장에서 돈이 수천만원씩 묶이면 공장은 바로 휘청대고 문제가 생긴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의 모 봉제업체 사장은 “4곳이 물건을 나눠 생산하고 납품했는데 한 곳도 결제 받은 곳이 없다”며 “법적으로 해결하는 건 꿈도 못 꾸고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공장은 마스크 26만5000장, 총 5200여만원의 대금이 밀려 있다. 그는 “월급이 안 나가자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주변 공장 3곳은 문을 닫고 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물건을 납품 받은 원청 기업인 G사 대표는 “4월부터 판매가 부진해 결제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빠른 시간 내 물건을 팔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현재 G사는 재고만 230여만장에 달해 자체 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황이 악화된 데는 코로나19 감염이 확산일로를 걷던 3월부터 유통업체들이 ‘일단 만들고 보자’며 마구잡이식으로 오더를 뿌리며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지속되자 각 지자체와 단체 및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마스크 생산·보급에 들어가면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면이나 기능성 마스크는 판매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영향도 컸다.
5월부터는 중국산 마스크까지 들어오고 가격과 유통질서가 함께 무너지면서 중소기업의 마스크 수요는 소강국면을 맞고 있는 중이다. 마스크업체 관계자는 “마스크 시장은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최악을 맞고 있다”며 “국내 시장이 복마전이 되면서 많은 업체들이 넘쳐나는 재고로 자금이 다 묶여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일확천금을 노린 중간 유통업체들이 난립하면서 봉제공장의 마스크 공임 역시 크게 내려가 양쪽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G사에 납품된 마스크의 경우 봉제공장 공임은 장당 300원인데 같은 제품을 공급하면서 어떤 곳은 공임이 200원까지 내려간 사례도 있었다. 원청업체에 납품하는 중간 업자들이 단계별로 마진을 챙기면서 봉제공장 공임만 30% 이상 깎인 것이다.
문제는 이들 공장이 계약서 없이 물건을 납품해 법적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취재가 이뤄진 10곳 이상의 봉제 공장 중 계약서를 쓴 곳은 한곳도 없었다.
모 봉제공장 사장은 “특히 마스크 납품은 지인들끼리 알음알음 일감을 받아 구두상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계약서를 쓴 곳은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봉제공장은 평소에도 계약서 없이 신뢰만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전순옥 위원장은 “계약서 없이 진행한 물건 납품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며 “가능하면 협단체 등 신뢰할 수 있는 곳과 작업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마스크 품귀가 극에 달하던 3월 ‘국민안심마스크 제작협의회’를 구성하고 서울시와 광진구 등 11개 구청에 200여만장의 마스크를 공급했다. 이를 통해 총 245개 공장이 참여하고 2250명 이상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효과를 봤다.
6월들어 기온이 크게 올라가면서 덴탈 마스크 수요가 폭발하자 중국산 기계를 들여오려는 브로커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500~1000평 규모의 공간만 마련하면 중국에서 수백대의 덴탈 마스크 생산 기계를 들여올 수 있으니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식의 제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순옥 위원장은 “중간업자나 브로커 말을 믿고 섣불리 손을 대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시중에 믿을 수 없는 오더가 난무하고 있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