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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무인년>이 밝았구나 싶더니 어느새 2월이─3월을
불러 들였다. “세월 참 빠르다”고 가슴으로 되새길 겨를도
없이 말이다.
운거산(雲去山)수귀해(水歸海)란 무상한 자연의 흐름을 인생
에 비유한 시귀라고 생각된다.
「구름은 흘러흘러 산으로 가고 물 또한 흘러흘러 바다로 가
누나」─.
자난 주말 책장속의 색바랜 책들을 우연히 뒤적이다가 겉표
지가 낡고 사가서 바삭바삭할 정도의 옛친구들이 펴낸 것을
손수 보내준 「시집」 「소설집」 「수필집」들을 대하고 더
욱 잔인한 세월의 무정함에 전율(戰慄)마저 느꼈다. 그리곤
떨어지고 헌데를 상처에 약바르듯 테이프로 뗌질했다.
▼그 중에서 지금 「한국예술원 회장」으로 있는 조병화(趙
炳華)등 몇 형의 귀엽고 예쁜 「시집(詩集)」도 그랬었다.
1956년 도서출판 「정음사(正音社)」에서 발간된 것들이다.
발행인은 조병화형이나 실타래子와도 무척 가까웠고 출판인
(出版人) 故 최영해(崔暎海 = 한글학자이며 독립투사였던 외
솔 최현배(崔鉉培) 선생의 장남·또한 의사이며 수필가로 한
때 낙양의 지가(地價)를 올렸던 최신해(崔臣海) 박사의 형님)
형의 입김이 서린 것들이어서 두루두루 지난 날의 추억으로
빠져들곤 했다.
조병화 시집 「사랑이 가기전에」와 「여숙(旅宿)」의 두 권
을 한숨에 훑어보니 감미로운 조시인의 <사랑이야기>가 그
대로 가슴에 와닿는 것만 갔았다.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중에선 가장 많은 시집을 펴낸 조시인
은 학창시절에는 <럭비선수>였고 친구를 좋아해서 「두주
(斗酒)」를 불사했었다(지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금주중).
▼조신의 아호(雅號)는 「편운(片雲 = 조각구름)」이다. 자신
을 하늘서 노니는 조각구름에 비유한 것인가─.
─어쨌거나 위 두 권의 시집중에서는 「봄」을 노래한 것이
몇 편있어 3월에 부쳐보고 싶어졌다.
다음은 「조춘(早春)」이라는 시다.
우울한 2월이 가누나
하늘과 땅이 활짝 풀리누나
까치집 같이 높은 맑은 유리창을 열고
자고 일어난 내 침대에도
솔개미처럼 먼 너의 눈에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세월을 재우고
봄은 오누나
활활 봄이 풀리누나.
사랑은 없어도
꽃 술에 취해
봄에 밀려
너를 두고서도 나는
둥둥 떠 가누나.
▼이번에는 「봄은 밤으로부터 하늘로」라는 시를 읊어 보자
봄은 밤으로부터 하늘로
뭉게 뭉게 풀려 사라집니다.
참혹한 나의 밤이여
겨울이여
사라지는 세월처럼
여인들처럼
고운 눈썹으로
안녕!
사랑은 내 것이 아녀도
듣기만 해도 좋다.
선혈처럼 상처진 가슴 가슴에
가시꽃처럼 보얀 아지랑이 끼고
소식이 없는 마음에서
나비와 같이
하늘이 가까워 옵니다.
깊어진 마음의 골짜기로
술술술 눈얼음이
풀려내립니다.
▼조병화시인은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지만 그림에 대한 조
예(造詣)도 심상치가 않다.
한국의 문인화적 분위기를 살린 유화(油畵)를 그린다.
그의 작품인 「시화(詩畵)」에선 그야말로 시속에 그림이 있
는 「시중유화(詩中有畵)」요─ 그림속에 시가 있는 「화중
유시(畵中有詩)」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