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울만한 거울이 없다”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보고 배울만한 비젼’이 없다는 것이다. 산만한 경영으로 인한 부적절한 투자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비효율적 업무가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현실은 서로의 위치보장에만 전력투구하게 만들고 있다.
상사들은 단기에 처리할 수 있는 사항임에도 개인적인 업무처리에 내부결제의 지연과 출장비의 낭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는가 하면, 그런 비행을 눈감아주고, 무조건적 아부하는 예스맨만을 편애한다. 여기에 무슨 리더쉽이 있겠는가.
구체적인 운영방안이 없다는 것보다 일은 저질러 놓지만 해결능력이 없는 윗사람은 더 큰 골칫거리다…”
꾸며낸 말이 아니다.
이것은 산업혁명에서 인터넷 혁명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가속에 가속을 가하며 뒤집히고 있는 지금, 某연구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내부비판과 개혁방안의 서두이자 우리사회에서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잠재적 불안요소.
바로 리더 부재의 극단적 현실을 나타내는 증거의 하나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데 믿고 따를만한 대상이 없을 때, 결국 구성원들은 잘되면 ‘혁명’ 못되면 ‘자멸’ 이라는 최종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故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성품과 지도력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그가 집권했던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는 미국 역시 복합불황에 허덕이는 시대였지만, 레이건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명료한 화법을 통해 미국인들을 집결시켜나간 인물로서 조명받고 있다.
국정운영, 특히 경제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였던 그가 2번 연속 재선에 당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형적인 텔레비전형 대통령이였다는 점과 국민과 소위 ‘코드가 통하는’지도자였다는데 있다고 한다.
자신의 최대 약점인 ‘단순함’을 강점으로 부각시키고, 권력과 힘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당장 힘들더라도 세계 최강의 일등국민으로서 자긍심 그리고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기에 결국 낙천주의적 지도자로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게 만들었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지금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개혁은 도처에 산재해 있지만, 또 어디에고 찾을 수 없다.
정말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과 같은 리더쉽이 없기에 신문 잡지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정작 국민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것일까.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하나에 온갖 로비와 인맥을 동원하여 무작정 지원금이 들어오는 시스템. 일은 중간층이 하고, 추켜 세워지는 것은 윗 사람이였는데, 일이 터지면 말단이 다치는, 마치 위급할 때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윗사람들의 모습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해야 옳을지 모르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오늘도‘복지부동’가시방석을 고수하고 있는 상전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것도 향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낙천주의의 시대도 가고, 강력한 리더쉽도 통하지 않는 이시대에 높은 자리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닌 듯 싶다. 올바른 지도자로서의 입지와 처세를 갖추고 있는지 냉정히 살펴볼 때다.
/유수연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