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산업용 끈 국산화 이끌어
생산에 필요한 기계…자체 기술로 조립 구축
사다리 테이프·낙하산용 안전망 등 국내 첫 개발
“중국산이 값이 싸니까 너나할 것 없이 수입만 하는데 그렇다면 국내 관련 생산업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장 문을 닫을 수는 없고…. 힘들더라도 당장은 버텨나가지만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에요.”
지난 12일 말복 날, 기자가 찾은 경기도 이천시 소재 선진섬유 공장. 공장 내에서는 찌는 듯한 무더위와 경쟁이라도 하듯 생산설비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00여㎡ 공장엔 낙하산용 안전망 생산기계와 블라인드 용 사다리 테이프 생산기계 그리고 팔사기가 갖춰져 있었다. 또 한 켠에 사다리 테이프 염색라인까지 자리 잡아 바이어가 원하는 컬러의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선진섬유는 끈만 전문 생산하는 업체다. 주력 제품은 블라인드용 사다리 테이프라 불리는 끈이다. 이 끈의 역할은 블라인드를 균일하게 매달리게 하는 동시에 좌우, 상하로 움직이더라도 블라인드가 어긋나지 않게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한다. 지금 국내에 블라인드용 끈을 생산하는 업체는 선진섬유가 유일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날 만난 김두환 선진섬유 사장(69)은 줄곧 생산현장만 지켜 온 엔지니어다. 섬유산업에 입문한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50년 생산현장의 길은 작동이 시원치 못한 기계는 자신이 직접 고쳐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한마디로 맥가이버판 버전으로 꼽을 만하다.
그는 대구 산지 섬유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다. 그가 생산현장에서 만난 첫 기계는 야센으로 불렸던 일본산 트리코트기계였다. 당시 회사내는 물론 대구지역 어느 섬유업체도 이 기계 조작 경험이 없었다. 겨우 서울에 소재한 섬유업체 남영의 도움을 받아 대구 섬유업체 최초로 외산 경편기계를 돌리는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동국직물로 회사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자수직물 생산과 제직 현장을 경험한다. 편직과 제직 생산현장을 거치면서 익히고 연마한 기술은 그를 평생 엔지니어의 길로 이끌었다. 김 사장은 1980년 독립경영에 나서면서 서울로 무대를 옮긴다. 산업자재 생산에 포커스를 맞췄다. 소파용 원단과 자동차 시트커버용 원단생산이 그것이다.
“원단은 그냥 튼튼하게만 짜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동대문 시장에서 잘 팔려나갔죠. 그런데 저는 그게 좋은 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도 비즈니스 감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순수 열정의 엔지니어의 길은 독립경영에 들어가서도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뛰어난 기계조작과 생산기술 때문에 특화 아이템 개발은 남들보다 앞섰으나 대량생산으로 연계시키는 비즈니스는 생각조차 않았다. 그리고 1987년 커텐 생산으로 눈을 돌린다. 김 사장은 커텐과의 만남이 끈을 생산하는 독특한 관계로 이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는 지금 26년째 끈과 연을 이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역시 끈만 생산하는 섬유엔지니어의 길을 걸을 것이라 했다.
“86년 아시안 게임에 이어 88년 올림픽을 앞두면서 커텐시장이 갑자기 변화하는 거예요. 블라인드 시장이 뜬 것이죠. 블라인드 시장은 선진국형 산업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이죠.”
블라인드 수요가 일어나자 블라인드를 안정스럽게 고정시키는 끈 수요도 덩달아 불붙었다. 그렇지만 당시 블라인드를 고정시키는 끈은 모두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김 사장은 끈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개발에 나섰다. 1년여 개발 기간을 거치면서 국산화한 이 제품이 바로 사다리 테이프라 불리는 끈이다.
“2년 전에 낙하산용 안전망 끈도 개발했습니다. 특히 낙하산용 안전망 끈 생산설비는 모두 자체기술로 만들었어요. 군용으로 사용하다보니 수요가 한정돼 매출 기여도는 크지 않지만 국내 기술로 생산하는 만큼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앞으로 생산에 필요한 기계 역시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할 생각입니다.”
김 사장은 앞으로 산업용 끈 개발과 생산에 주력해 나가겠다고 의욕을 피력했다. 제방 등 토목용으로 사용하는 보강재용 끈을 예로 들었다. 특히 아라미드 섬유 등 고강도를 요구하는 섬유소재의 국내 생산이 이뤄지면서 앞으로 끈 수요도 다양하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높였다. 틈새시장을 겨냥 특화제품 개발로 승부에 나서는 김 사장의 50년 엔지니어의 길은 마냥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