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 “인정할 수 없다” 강하게 반발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의류봉제 기업들이 근무시간 및 초과 근무와 관련,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노동인권 조사 보고서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 같은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정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얀마의 노동인권 단체인 ‘액션 레이버 라이츠(Action Labor Rights, 이하 ALR)’는 지난 3월 미얀마 진출 한국 의류 봉제기업의 인권 실태 조사 보고서인 ‘Under Pressure’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ALR의 뚜레인 아웅(Thurein Aung)씨가 지난달 25일 한국을 방문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기업과 인권 NAP(National Action Plan, 국가인권정책계획) 콘퍼런스’에서 이에 대한 예방책 마련을 요청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금 불거진 것이다.
뚜레인씨의 한국 방문을 주선한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KTCN WARCH)’는 이번 조사 보고서는 영국의 인권 연구소(Institute for Human Rights and Business)와 덴마크 국가인권위원회(Dennish Institute for Human Rights)가 공동으로 설립한 미얀마 기업책임센터(Myanmar Center for Responsible Business) 지원으로 제작돼 국제사회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ALR 측은 2015년 4~6월 동안 한국계 39개 봉제공장, 총 1200여명의 직원 인터뷰를 통해 1차 자료를 확보하고 핵심 이해 관계자 등 주요 정보원을 통해 얻은 2차 데이터를 토대로 최종 작성됐다고 밝혔다. 핵심 논란은 주당 초과근무 시간 위반과 불합리한 노동관행이다.
▲초과 근무 법규정 위반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 한국 기업들의 약 30%는 초과 근무를 주당 최대 16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법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초과 근무를 거부했을 때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이른바 ‘퇴근공제(gate pass)’ 같은 불합리한 패널티가 존재하는 것으로 주장했다. ALR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노동자의 62%는 “초과 근무를 거부할 수 없다”고 했고 63%는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실소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조 차별 대우와 열악한 근로환경
응답자의 70%는 임금과 승진, 초과근무 수당, 근로계약 해지 등에서 노조 지도부와 활동가들에 대한 차별이 있어 문제라고 응답했다. 그나마 조사 대상 기업(근로자 30인 이상) 중 노사협의회가 있는 곳은 14%에 불과했다. 직장 내 여성 성희롱이 존재하고 비상구나 화재안전장치 미비 같은 사항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 기업들 “있을 수 없는 일”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의류봉제 기업 관계자들은 이 같은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초과 근무와 관련, 16시간 이내로 제한한 법 규정을 위반할 여건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현지에 진출한 모 업체 관계자는 “초과 근무시 통상 임금의 2배를 지급하는데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초과 근무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일주일에 16시간 이상을 초과 근무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항변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하루 1~2시간은 초과 수당을 지급하며 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를 넘어서면 일을 할 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초과 수당을 아끼기 위해 대다수 기업들이 토요일에는 통상 근로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한국 의류봉제 기업들 차원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에 따르면 약 2주전 미얀마 한인봉제협의회 측에서 반박 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최저 임금제 도입으로 인건비 50% 상승
조사 기간에 대한 이의도 제기됐다. 미얀마는 작년 7월 최저 임금을 3600짯으로 정하고 9월1일부터 모든 산업에 이를 적용했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이로 인해 작년 9월부터 급여가 1.5배 증가해 우리 업체들 채산성이 크게 악화됐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제 발표 이전에 적용된 임금으로 현지 근로자들의 급여와 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만약 이 같은 인권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얀마에서 대규모 시위나 파업이 있을 텐데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런 인권 보고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왜 한국기업인가
ALR은 이번 조사 대상으로 한국 기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 기업은 미얀마 의류 수출 산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015년 3월 기준 한국은 113개 프로젝트, 33억6000만 달러로 미얀마 전체 해외 투자의 약 7%를 차지한다. 제조업 부문만 놓고 보면 중국에 이어 2번째다.
미얀마 의류제조업체연합(MGMA)에 따르면 한국계 공장은 전체 근로자의 36%를 고용한 가장 큰 규모의 투자국이라는 것이다.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에 따르면 뚜레인씨는 6월1일까지 한국을 공식방문하고 있는 유엔 기업과 인권실무 그룹을 만나 미얀마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실태를 설명하고 한국정부와 기업에 문제 해결을 요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