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대기자의 화판(化板)-9]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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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섬유수출 8~9% 줄어든 130억불
지지선 무너지면 나락으로 빠지는 위기
어려울수록 뼈를 깎는 자구노력 절실
글로벌 경제는 융복합 시대로 전환
모든 역량 한 점(dot)에 집중하는 전략 필요
국내 섬유업계는 과거 10년 이래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한 해 실적 마감을 한 달 남겨둔 상황에서 올해 섬유류 수출은 전년대비 8~9% 줄어들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작년보다 약 10억불 이상 떨어진 130억불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 이후 섬유류 수출이 130억불 밑으로 떨어진 해는 2006년(108억), 2009년(116억) 두 번에 지나지 않았다. 과거 20년 사이 섬유 수출의 반등 저항선이 130억불이었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2006~2010년 사이 130억불 시대를 지나 한국섬유수출은 2010년부터 150억불 시대를 열었다. 159억불을 찍으며 정점에 달했던 2014년 이후, 섬유 수출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작년에는 소폭 상승세를 타기도 했지만 지난 5년간 계속해서 130억불대에 머물고 있다. 이 지지선이 무너지면 또다시 110억불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 사이클이 그랬다. 현재로서 내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 수년간은 그나마 해외 경기 호황이 뒷받침돼 버틸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경제블록화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교역, 미중 무역 갈등 요인으로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섣부른 희망은 금물이다. 공무원들 눈칫밥을 먹고 있는 섬유업계가 상황이 어렵다고 정부 지원을 기대해봤자 실망감만 커질 뿐이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분골쇄신의 각오 없이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해 나갈 방도는 나오지 않는다. 올해 초 코오롱머티리얼은 그룹 60년 역사의 헤리티지를 벗어 던지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회사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원사 부문 철수는 시장에 충격을 줬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여기서 그친다면 코오롱머티리얼 스토리는 여느 기업의 망사(亡史)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업계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회사는 과거 정번품 위주의 낡아 빠진 유산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머티리얼은 최근 반기와 분기 보고서에서 나노 멤브레인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던 폴리에스터 나일론 아크릴 스판덱스는 사라지고 이 자리에 직경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극세 섬유 집합체를 활용한 나노 멤브레인 소재를 끼워 넣었다. 나노섬유를 적층해 만든 나노 멤브레인은 기능성 의류, 수처리 및 에어필터, 전지 분리막 등 초고도 기술의 바탕이 되는 핵심 소재다. 인공혈관, 메디컬 필터, 제약 등 바이오 산업도 나노 멤브레인 소재 의존도가 매우 높다. 뿐만 아니다. 전기차, IT모바일 산업에서 나노 멤브레인 기술 발전은 미래 친환경 시대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코오롱머티리얼은 이미 2008년 설립 당시부터 불소계 나노 멤브레인에 대한 원천 특허를 취득하며 독자 제조기술을 개발해 왔다. 종래의 다공성 멤브레인과 비교해 우수한 통기성과 방수 방진 성능을 갖는 동시에 초박막 형태의 멤브레인 구현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IT모바일, 에너지·환경 분야 사업화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이 회사는 전자제품에 방수 방진 기능을 가진 벤트(neoVENT-SW)를 개발하고 사업화에 나섰다. 나노 멤브레인 제조시설과 이를 적용한 벤트 제품 양산 공정을 보유하고 상업화에 골몰하고 있다. 비록 성공을 담보하기는 어렵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한 점(dot)에 집중할 수 있는 요인은 어찌보면 현재의 나태함을 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 지금 글로벌 지구촌에는 산업간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 시대가 도래했다. 섬유없이 탄소자동차가 나올 수 없고 미세 나노기술이 없으면 폴더블 스마트폰이 탄생할 수 없는 급속한 환경 변화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에서 소비자 수요를 좇는 맞춤형 시대를 지나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융복합형 테크텍스(Tech-Textile) 기업이 되지 않으면 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내년에는 더욱 혹독한 시련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버팀목이 되던 글로벌 경기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어려웠던 내수 경제 역시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기업은 살아 남아야 하고 방법은 있다. 빗대자면, 살(원사)을 버리고 뼈(나노 멤브레인)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의지가 절실한 위기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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