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조직문화에서 개인 존중문화 사회로 전환
코로나19 영향으로 편안함 추구 경향 가속화
#직장인 10년차인 김수현씨(가명·39)는 입사했을 때는 모두가 정장을 입어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정장에 구두를 신어야 했고, 여성 정장은 좁은 치마에 하이힐이 기본 착장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업무시간이 아닌 점심시간이나 출퇴근길은 발이 아파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2010년 대학교 2학년이었던 이서정씨(가명·32)는 차려입는 자리에서는 하이힐을,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운동화를 신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 연예인이 킬힐을 신으면서 킬힐 유행이 시작됐지만 대학동기들은 발이 아프다는 이유로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었다.
국내 제화 업계는 입을 모아 편한 구두가 대세라고 말한다. 높은 매출을 자랑하는 여성구두 상품군은 대개 로퍼(단화), 플랫슈즈(굽없는 낮은 신발), 통굽 미들힐(5cm높이의 넓은 굽 구두)이다. 10년 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던 킬힐은 2020년에는 3위에도 들지 못한다.
출근길 패션을 보면 스니커즈부터 운동화, 구두까지 다양한 신발이 보인다. 넥타이나 킬힐을 갖추고 지하철을 탄 사람은 보기 드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출근길 패션은 더욱 편한 복장으로 바뀌었다.
플랫슈즈 브랜드 바바라 윤관형 본부장은 킬힐 유행이 사그라든데 대해 한국 패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편안함을 원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0년 전에는 어떤 직종이든 셔츠에 자켓, 구두를 맞추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매일 정장을 입는 직군은 얼마남지 않았다고 사회변화를 짚었다.
윤 본부장은 빠른 경제발전 속도에 따라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패션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경제발전 시기에는 조직문화가 규격화됐고 이를 엄격하게 따라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천천히 사회가 발전한 유럽지역이나 미국에 비해 한국은 압축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에 5년~10년 사이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개인주의 현상이 보편화된 것이다.
윤 본부장은 “2015년만 해도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며 “한 번 편안함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옛날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화 전문 탠디 개발실 강선진 부장은 코로나 사태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더욱 빠르게 확산시켰다고 봤다.
강 부장은 “실용성을 따지는 전반적인 트렌드에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더해져 개인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아이템 수요가 늘었다”며 “높은 힐과 펌프스 디자인은 모두 통굽스타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에게 준 충격이 커, 이를 개인이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편안한 라이프스타일 즐기기’라는 설명이다.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디자인하는 소다는 개인주의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소다 김성용 상무는 “지금은 굽 하나에도 눈에 띄는 장식이 들어가야 소비자 시선을 끌 수 있다”며 “예전처럼 똑같아 보이는 그저그런 디자인의 구두는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