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혁신 이끌며 MZ세대 유인
폐쇄적 정책으로 시장발전 저해
혁신이 사라진 산업에서
지속가능 성장은 요원한 과제
2021년 현재 한국 패션유통의 화두는 온라인이다. 그중 가장 핫(hot)한 지점이 바로 플랫폼이다. 다양한 상품과 고객을 한데 모음으로써 대중의 관심과 기호를 집중시키는 온라인 플랫폼의 레버리지(leverage) 효과는 그 어떤 마케팅 수단보다 강력하다. 여기에는 모든 이해 관계자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성’과 이를 바탕으로 규모와 몸집을 키우는 ‘확장성’이 크게 작용했다. 온라인 플랫폼은 이를 통해 新자유시장경제의 꽃을 피워냈다.
국내 패션전문 온라인 플랫폼 부동의 1위는 무신사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결합한 레버리지 효과로 작년거래액 1조원을 돌파하고 미래 소비 주역인 MZ세대의 놀이터이자 혁신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이 혁신의 시장에서 우려할 만한 일들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무신사는 최근 “브랜디, 에이블리, 브리치 등 도매상품 취급 플랫폼에 입점하는 브랜드는 향후 무신사 브랜딩에 손실을 입히는 것이라 판단해 거래를 중지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띄워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 업계는 이를 단순한 경고가 아닌 시장 퇴출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입점사들은 “무신사 뜻을 거스르면 초기부터 (성장의) 싹이 잘려 플랫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5월이면 단독(독점판매)을 풀어준다고 하지만 이후에도 (피해가 우려돼) 타 플랫폼 입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사마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무신사에) 상대도 안되는 위치다. 싸울 의지도 생각도 없다. 그만큼 공룡이다.”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와 계약서에 독점판매 조항을 넣어 인기있는 브랜드를 자기네 플랫폼에 묶어 두는 정책을 쓰고 있다. 대신 수수료 혜택과 마케팅 지원을 주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많은 곳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스케일업에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피로감이 쌓인다고 호소하고 있다. 가두리 양식장처럼 한 곳에 발이 묶인 브랜드는 시장 확장에 애로를 겪고 변화 대응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
개방성과 확장성으로 성공한 혁신 기업이 새로운 혁신을 막으며 폭주하면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그 전례를 배달시장에서 이미 목격했다. 덩치를 키운 1위 사업자가 독점적 지배권을 무기로 수수료 제도를 변경하면서 중소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폐해를 막고자 경기도는 자체 공공배달앱을 개발하는 지경까지 왔다. 세계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독과점 사업자의 시장 결합을 제도적으로 막는 이유다.
절대자의 권위에 눌려 새로운 혁신이 발아하지 못하는 시장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혁신의 소멸은 곧 시장의 소멸이다. 이는 곧 참여자, 나아가 소비자의 불이익과 직결된다.
반면, 1위와 경쟁하는 후발기업의 출현은 시장 혁신과 소비자 권익 증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3월 국내 1위 라면 기업 농심의 신춘호 회장이 별세했다. 농심은 삼양라면이 1963년 우리나라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이래 지난 60여년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며 시장의 혁신을 이끌었다. 국민 라면으로 불리는 신라면의 탄생은 이런 경쟁의 산물이다. 한국 라면은 내수에서 다져진 탄탄한 제품 노하우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외에서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수출은 작년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린데 이어 올 1분기에는 전년대비 18.9% 증가한 1억5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업계가 무신사에 거는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무신사는 기성 브랜드가 장악한 패션 시장에서 온라인과 IT 기술을 접목, 미래 소비층의 다양하고 새로운 기호를 충족하며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무신사 홀로 독야청청하는 시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업계 참여자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끊임없는 시장 혁신을 선도할 때만 미래 발전은 담보된다. 언제까지 가두리 양식장에서 혁신을 바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