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려진 이론…새로 밝혀진 사실없이 과대포장
12년전쯤에 ‘세탁돌’이라는 물건이 전국에 유행한 적 있었다. 세탁기에 세제를 넣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기한 돌이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제를 넣었을 때보다는 세탁 성능이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놀랍지 않은가? 돌의 성분은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그 돌은 세탁성능이 단지 몇 퍼센트만 부족해도 성에 차지 않는 까다로운 대한민국의 주부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여 곧 사라졌다. 세탁돌의 비밀은 ‘차려진 밥상에 올려놓은 수저’ 였다.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은 세탁기는 세제를 넣지 않아도 빨래가 된다는 것이다.
대개는 세제 때문에 세탁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세제의 역할은 마무리 투수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세제의 투입이 없어도 85% 정도는 세탁이 된다. 세탁돌 같은 것은 전혀 필요 없다. 그 업자들이 발견한 것은 ‘세탁이 가능한 돌’이 아니라 세제가 없어도 세탁이 85%는 가능하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 MIT공대 : 플라스틱 봉지로 만든 옷
다음은 미국의 MIT 공대에서 발표한 연구 내용이다. 원문을 축약하여 번역하였다. 그들은 쓰레기 봉지를 사용하여 친환경 Self-Cooling(자가냉각?) 원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려 17명의 연구원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이 논문은 ‘차려진 밥상에 수저 놓기’의 전형적인 예로 보인다.
- 다 음 -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이하 MIT) 연구팀이 폴리에틸렌을 원료로 냉감직물 개발에 성공했다. 폴리에틸렌(Polyethylene, 이하 PE)로 만든 식료품 랩은 얇고 가벼워서 열을 가두지 않고 통과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원단보다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PE가 물을 전혀 흡수할 수 없는 소수성 물질이라는 것이다.
MIT 연구진은 PE로 섬유를 만드는 방사 과정에서 약간의 산화를 통해 표면이 약한 친수성을 띠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실 한 가닥 내에서 섬유사이의 공간이 모세관을 형성하여 물분자가 수동적으로 흡수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Wicking 능력을 최적화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섬유의 특성을 모델링하고 실 전체에서 특정 방향으로 정렬된 특정 직경의 섬유가 섬유의 wicking 능력을 향상 시켰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모델링을 기반으로 보다 최적화된 섬유 배열과 치수로 폴리에틸렌 원사를 만든 다음 산업용 직기를 사용하여 원사를 직물로 엮었다. 그런 다음 직물 조각을 물에 담그고 액체가 흡수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여 면, 나일론 및 폴리에스터와 비교한 폴리에틸렌 직물의 흡수 능력을 테스트했다. 그들은 또한 증발 테스트를 했다. 모든 테스트에서 폴리에틸렌 직물은 다른 일반적인 직물보다 빠르게 물을 증발 시켰다.
재생 폴리에틸렌으로 미래 Self-cooling 원단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또 원래 흡습 성능이 전혀 없는, 젖지 않는 원단을 최적의 설계로 젖게 만든 데 성공했다고 한다.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하고 그에 맞춘 모델링 기법으로 원사와 원단을 설계하여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가?
■ 발견들의 진위
PE의 공정수분율은 0이다. PE는 탄소에 수소가 붙어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즉, 지방산과 비슷해 물을 거의 흡수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 팩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발견했다고 하는 다음의 사실들이다.
첫번째 발견
‘약한 친수성’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약간의 산화가 왜 친수성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약한 친수성’ 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척도가 전혀 없고 그나마 반복적인 사용으로 소멸되는 기능이라고 한다.
사실 시중에 흔하게 팔리는 폴리에스터 마이크로 원사로 만들어진 스포츠타월은 흡수능력이 면의 두배 이지만 전혀 친수성을 띠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 물을 묻히면 발수 처리된 원단처럼 보이고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친수성은 띠면 좋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의류소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발견
“한 가닥의 실에 있는 여러 가닥의 섬유 사이로 모세관력이 작용한다”라는 발견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바로 쿨맥스(Coolmax)가 폴리에스터인데도 흡수력이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기본 원리이다. ‘틈새가 작을수록 모세관력은 크다.’ 라는 사실은 15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미 발견하였고 보일(Boyle)이 이를 증명한 바 있다.
세번째 발견
여기서 발생한 Wicking은 모세관력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관력은 틈이 좁을수록 커지므로 모세관력의 증가 즉, Wicking 능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실을 만들 때 되도록 섬유 간의 틈새가 작게 설계하면 된다 따라서 굵기가 가는 섬유를 물이 잘 흘러가도록 고르게 정렬하는 방법은 유효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은 섬유의 체표면적을 크게 설계하는 것이다.
네번째 사실
면이 빨리 마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친수성 이기 때문이다. 증발은 물분자가 표면을 떠나려고 하는 힘인데 면이 물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증발이 어려운 것이다. 반대로 소수성은 물을 밀어내므로 증발이 훨씬 더 쉽다. 너무 당연한 사실 아닌가? PE 원단은 굳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가장 강력하게 Quick Dry가 일어나는 소재이다. 세탁돌이 세탁을 한 것이 아니다.
■ 결론
처음 명제부터 틀렸다
여기에 언급한 것 외에도 sustainability에 대해 장황하게 기술하고 있으나 폴리에틸렌은 원래 재생이 쉬울 뿐 아니라 굳이 재생이 아니더라도 원래 친환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가볍고 융점이 낮기 때문이다. 이 소재가 의류에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MIT 연구원들의 주장처럼 ‘흡습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염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이 지독한 소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흡습성이 나쁘기 때문에 의류 소재로 사용할 수 없다’ 는 명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흔한 폴리에스터의 흡습성도 0.4%로 PE와 별 차이 없다. 그래도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의류 소재이다. 그들이 틀렸다.
차려진 밥상
PE 자체는 전혀 물을 흡수하지 않지만 이 소재를 섬유와 실을 거쳐 원단으로 만들면 젖는다. 모세관현상 때문이다. ‘소수성’ 이라는 물을 밀어내는 분자간 작용하는 화학적인 힘보다 섬유 사이에 작용하는 물리적인 힘인 모세관력이 수 백배 더 크기 때문이다.
보다 효율적인 설계로 모세관력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 원단은 잘 젖는다. 그들이 젖지 않는 원단을 젖게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젖는 원단인 것이다. 사람들은 PE의 흡습성이 0이기 때문에 이 원단이 젖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세탁돌’이 세탁을 한 것이 아니다.
냉감?
그들이 이 원단을 Self-Cooling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빠른 증발 때문이다. 증발이 쉽다는 것은 증발이 빠르게 일어난다는 뜻이며 많은 기화열이 일시에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런 기능은 원래부터 PE가 보유한 극소수성으로 인한 것이지 세탁돌이 세탁을 한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기화열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재와 상관없이 섬유나 원사의 체표면적을 최대화 하는 방법이 가장 유효하다. 영국이 개발한 ‘Coolcore’ 원사는 폴리에스터 섬유의 체표면적을 극대화하여 기화열을 증가시킨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냉감 원단이다.
같은 원사를 PE로 바꾸면 조금 더 나은 결과가 나오겠지만 PE로는 체표면적을 폴리에스터 만큼 확대할 수 없다. 더구나 PE는 열전도율이 매우 낮은 소재이다. 따라서 레이온이나 면처럼 피부와 접촉했을 때 느껴지는 차가움이 전혀 없다.
차라리 보온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래 그림에 나와 있는 원단들은 통기성, 경량 wicking을 고려하여 설계한 여름용 니트 원단 들이다. 굳이 PE 보다는 다른 소재를 저런 식으로 편직 하면 더 시원할 것이다.
밥상에 놓은 수저
이 연구 논문에 ‘표면에 발생하는 약간의 친수성’ 이라는 대세에 지장 없는 발견 이외에 새로운 사실은 전혀 없다. 모두 밝혀진 사실이고 이론이다. 섬유지식 3 “Wicking의 두 얼굴” 이라는 글만 읽어 봐도 저 내용들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들이 처음 발견하고 새로운 소재를 설계/발명한 것처럼 논리를 펼치고 있다. ‘세탁돌’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논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발명이라며 업계에서는 환호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