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 데스크칼럼] 지속가능한 패션의 유행은 지속가능할까
[한섬 데스크칼럼] 지속가능한 패션의 유행은 지속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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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모럴라이선싱이 과소비 유도
의류생산 2배 증가·패스트패션 성장세

적게 사고 오래 쓰며 재활용 실천해야
친환경 가이드라인·시스템 구축할 것

유행은 힘이 세다. 어제까지 촌스럽던 마젠타가 ‘올해의 컬러’로 등극하니 갑자기 세련돼 보이고, 패션 암흑기라고 치를 떨던 Y2K 스타일도 블랙핑크 제니가 걸치면 한번쯤 따라 입고 싶어진다. 어떻게든 대중을 설득하는 유행의 힘이야말로 패션산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섹시한 트렌드는 ‘친환경·지속가능성·ESG’ 3종세트다. 어쩌다 이렇게 재미없는 용어가 유행하게 된 걸까. 패션은 세계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운동과 태생적으로 거리가 멀고, 심지어 국제산업 중 두번째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분야인데.

유행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친환경라벨이 붙은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는 일반제품을 살 때보다 대체로 지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가치소비라는 근사한 단어로 방만한 쇼핑을 합리화하는 ‘모럴 라이선싱’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iStock

고도화된 패션산업이 이런 심리적 트릭을 놓칠 리가 없다. 게다가 친환경·지속가능성·ESG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소재의 작은 영역, 생산과정의 일부에만 친환경 요소를 적용하고 “우리 제품을 사서 지구를 지키세요” 나팔 부는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가.

은근슬쩍 친환경 딱지만 붙인 제품 역시 부지기수다. 네이버 쇼핑에 ‘에코레더’를 치면 27만 266개(3월21일 기준) 제품이 뜬다. 대다수는 석유계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우레탄 소재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죽을 대체하던 ‘합성피혁’이 호시절을 만나 친환경제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에코 퍼, 에코 스웨이드 다 비슷비슷하다. 친환경 마케팅 관련 규정이 없는 틈을 타서 막연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만 훔쳐 쓰는 셈이다. 

그린워싱이 아니더라도 사실 ‘친환경소비’ 같은 건 없다. 덴마크 환경부 리포트에 따르면 에코백은 7100회 이상 써야 비로소 일회용 비닐봉지 이상의 친환경 효과를 얻는다. 에코레더의 평균 수명은 1~2년 정도지만 동물가죽제품은 잘 관리하면 수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진정 지속가능한 소비는 무엇이건 최대한 적게 사서 오래 쓰고 재활용하는 행위다.

물론 대부분의 패션기업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기보다 사이즈별로 색색의 에코백을 만들고 사과나 선인장 소재의 에코레더 재킷을 새로 사라고 권한다. 

덕분에 패션산업은 쑥쑥 컸다.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친환경·지속가능성 패션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8조2899억원에서 올해 약 10조7703억원까지 성장할 예정이다. 동시에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패스트패션의 시장규모 역시 올해 약 161조로 전년보다 15%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사람들은 친환경소비에 돈을 쓰고 그렇지 않은 제품에도 지갑을 연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유행은 과소비를 불러 왔을 뿐,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 모든 유행에는 끝이 있다. 전 세계를 점령한 친환경의 유행이 언제 사그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미국에서는 친환경 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연기금 ESG 투자금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 환경부의 올해 계획도 친환경 대책보다 신사업을 통한 수익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각국의 역학관계에 따라 친환경 대세론이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도한 그린워싱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로도 역시 무시 못하게 높다. 

다 소용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패션 따윈 불가능하고 결국 지구는 의류 쓰레기로 뒤덮일 거라는 절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유행은 힘이 세고, 아직 대중들은 친환경·지속가능성·ESG에 첨예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럴 때 패션기업이 자원선순환 구조를 만들도록 압력을 넣고,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수립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환경문제는 고프코어룩과는 다르다. 유행이 지났다고 기후재앙이 없던 일이 되거나 플라스틱 쓰레기가 사라져주진 않는다. 패션산업에 있어 친환경은 돈 버는 수단으로써의 트렌드가 아니라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갖춘 의무사항이어야만 한다. 지속가능성의 유행이 지나간 후에도 지구와 우리의 옷장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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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23-06-10 21:22:19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각, 새로운 관점을 볼 수 있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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