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시대, ‘사’ 지향
18세기 이후, ‘상(자본)’ 이 세상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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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공농 순이 지배
최상위인 사(관)가 상(시장)·공(기술) 몰라
‘농공상사’의 시대로 전환해야
유교 사회에서 주요한 구성요소인 사민(四民), 즉 사농공상은 대략 2000년 전인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백성을 사(士, 학자), 농(農, 농민), 공(工, 장인), 상(商, 상인) 네 가지로 분류한데서 유래했다. 《서경》과 《한서(漢書)》에서는 “사농공상, 사민의 업(業)이 있다”고 해 민(民)의 직업을 네 종류로 대별했고 《관자(连接管)》에서는 “사농공상, 사민은 나라의 초석(士農深圳四民, 國之礎)”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농공상의 개념이 고려와 조선시대에 비슷하게 전해져왔고 이는 직업의 기준이나 분류뿐만 아니라 서열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당시 사회는 서로 ‘사’를 지향하고 상대적으로 ‘공’과 ‘상’은 천시됐다. 수 천년동안 이런 가치관이 지배하며 ‘사’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실질적 주인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가 18세기 중반, ‘공(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가들이 세력을 쌓고, 자본 중심의 기업들이 중심이 되는 산업화 사회로 변해감에 따라 ‘상(자본)’의 위치가 급격히 향상됐다. 요즘 시대에 ‘돈’은 무소불위의 최상위 권력이다.
결국 ‘공’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상’이 세상을 주도하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기계-전기-디지털로 이어지는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과 최근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공’이 이끄는 디지털 전환과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지배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가 주도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사상공농’ 순인 것이다. 오늘날 ‘사’는 과거 학자의 개념을 넘어 소위 ‘관(官)’을 상징하는 것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여한 자격에 의해 행해지는 입법, 사법, 행정 등을 수행하는 사람 혹은 기관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농’도 농민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수고(땀)로 자연을 가꾸고 무엇인가를 수확하는 주체를 포함한다.
그래서 ‘사(관)’이 정책과 규제대상 및 범위를 정하면 ‘상(자금)’이 투입되고, ‘공’이 기술을 개발하는 구조다. ‘농’은 오늘날 산업화 사회에서는 보존가치가 있는 따로 떨어진 외톨이 신세다. 이러한 구조에서 문제는 최상위에 군림하는 ‘사’가 ‘상(시장)’이나 ‘공(기술)’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특히 ‘사’의 세계에서 시시각각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공’의 전문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블록체인을 잘 모르는 ‘사’가 블록체인 산업 정책을 만들고 규제를 한다. ‘디지털 전환’이나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들도 과거의 ‘녹색성장’처럼 유행어로 취급되기 일쑤이고, ‘사’는 이 영향이 얼마나 클지 잘 알지 못한다.
얼마 전 서방의 지인들과 한국의 과학기술의 미래에 관하여 견해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은 한국의 과학기술의 내용과 수준에 관해 분명히 놀라움과 존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낮은 위상에 관해서는 걱정을 나타내었다.
필자도 한국의 과학기술인으로서 절대 공감하는 바이다. ‘사’의 도움이 없이 ‘공’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가 ‘공’을 끌고 가서는 절대 안 된다. ‘사’는 ‘공’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시대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
2022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969조원이다. 엄청난 규모지만 미국의 한 기업인 애플(Apple)사 시가총액인 2940조원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한국이 한해 벌어들인 돈을 다 모아도 ‘공’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 하나를 살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기업이 미국에만도 여러 개다. 우리도 이제는 ‘공’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신에게 부여받은 지구와 자연을 땀으로 가꾸는 ‘농’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사’는 맨 밑에서 든든하게 이들을 섬기며,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도와야 한다. ‘상’은 ‘공’과 ‘농’이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의 ‘사농공상’을 넘어선 오늘날 ‘사상공농’ 시대는 끝내고, ‘농공상사’의 시대로 전환해야만 한다. 그래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