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관리되지 않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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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0만벌 팔린 롱패딩
그 많던 롱패딩은 어디로
하지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만들려고만 했지, 만들어진 물건의 폐기와 소멸은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가 사용했던 의식주 제품은 우리 손을 떠나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유용했던 제품’은 ‘쓸모없는 쓰레기’로 순식간에 신분이 변한다.
쓰레기가 되기 이전까지 제품의 이력은 추적할 수 있다. 식당에서 원산지 표기를 하듯, 모든 제품의 원료 생산지와 노동자, 광고와 판매까지 관련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 모든 단계와 과정이 이익 창출이라는 목표에 따라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변덕이 심한 날씨처럼 겨울 옷차림도 어수선하다. 어느 해 겨울엔 추위가 맹렬하여 롱패딩이 거리를 뒤덮었다.
교복처럼 비슷한 패딩을 갖춰 입은 중·고·대학생들의 등·하교 길은 남극 펭귄들의 행진과도 같았다. 하지만 요즘 앞뒤 가리지 않는 날씨 탓인지 롱패딩은 한물가고 숏패딩이 대세라는 광고가 넘친다. 2018년 한 해에만 롱패딩 2백만 벌이 팔렸다고 하니, 유행 주기를 고려해 앞뒤로 계산하면 대략 천만 벌이 전국에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 많던 롱패딩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패션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입을 만한 옷도 유행에 뒤지면 옷장에 처박아두고 다시 새 옷을 사는 세태가 바뀌지 않는다. 누구나 헌것은 버리고 새것만 사려고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낮은 생산력의 시대를 살았던 16세기 천재 학자 서경덕(1489~1546)은 새로운 물건들이 끝없이 생겨나고, 결국 버려져 쓰레기로 사라지는 현실을 보며 <유물(有物)>이라는 시를 남겼다.
有物來來不盡來 (세상에 모든 것들이 끝없이 생겨나네)
來纔盡處又從來 (새것이 생겨난 다음에도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나네)
來來本自來無始 (새로움의 시작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네)
爲問君初何所來 (당신 자신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아시는가)
有物歸歸不盡歸 (세상 모든 것들이 끝없이 죽어가네)
歸纔盡處从末歸 (그렇게 사라져가도 아직도 남아 있으니)
歸歸到底歸無了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질 그 날을 도무지 알 수 없네)
爲問君從何所歸 (당신 자신은 어디로 사라져갈지 혹시 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