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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정신과 미의식
15세기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센노 리큐’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마당을 깨끗히 쓸어내고 난 후, 단풍잎 몇개를 일부러 떨어뜨려, 완벽한 청결속에 남아있는 ‘아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내는 미의식의 소유자로서, 가난과 청렴속에 인간을 배려하는 정성을 기본으로 한, 일본 차문화를 道의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한껏 자신을 낮추고 이세계와 저세계의 경계, 그것을 구분하는 깍듯한 형식속의 카리스마와 같은 비장함... 그리고 겨울산속의 거적집과 같은 외로움과 한적함이 그가 추구하는 미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말년과 역사적의미는 다소 드라마틱하다.
그는 그를 가장 총애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으며, 청빈낙도를 추구하던 그의 사상은 금은 보석과 찬란한 자수로 덮인 있는 자들의 ‘호사’로 포장된채 오늘날 일본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ZEN(禪)의 상징적 인물로 남게 되는 야릇한 운명의 소유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빈과 호사의 불균형적 美
이 센노 리큐라는 일본 역사속 인물의 청빈사상과 정신세계가 새삼 조명받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지금 유행하고 있는 패션과 디자인계를 강타하는 ZEN의 열풍때문이긴 하다.
그러나 유럽의 상류계층에서는 ‘일본의 다도와 꽃꽂이 그리고 스시와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면 귀족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문화는 서양인들의 열등감마저 자극하면서 그들의 정신세계 깊숙히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ZEN적인 디자인의 기본은 두께와 촌법, 그리고 여백의 강조에 있다.
여백은 ‘저항’이라든가 ‘불안정’이라는 메시지성을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장식을 많이 한 것 보다 더 화려한, 있는 것을 없애면서 또 다른 풍요로움을 강조하기도 하는 전혀 새로운 미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고도의 정신적인 호사와 철학적 디자인이라는 언밸런스함은 유럽인에게 있어서는 색다른 상당한 문화적 충격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재미있는 것은 이 선적인 도락의 하나인 일본다도의 호사스러움의 극치의 원형은 조선 도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질박하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질그릇의 깨어진 금들 속에서 그들은 우주를 느끼고 인생과 삶이라는 절대절명의 미의식을 부여하여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니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딜럭스 패션의 美的 凝視.
문화의 흐름의 앞뒤가 어떻게 뒤집혔건 간에, 지금 세계의 디자이너 컬렉션 역시 20세기를 총괄하는 패션의 원류로 혹은 딜럭스 패션의 또 다른 美的凝視로 이 ZEN적인 요소를 채용, 끝없이 몰두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요즘 패션계에는 파리의 글래머한 섹시 걸들과 뉴욕의 액티브한 캐리어 우먼들, 그리고 디자인은 ZEN적인 요소가 하나로 되어야 21세기의 글로벌 패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 한창이다.
이문화와 저문화를 뒤섞어서 전혀 다른 문화로 전세계인을 하나로 뭉쳐지는 이른바‘퓨전의 법칙’속에 ZEN은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소스가 된것이다.
궂이 말하자면, 이것은 와인은 숙성기간이 오래되지 않아도 맛은 있지만, 최적의 상태에서 숙성된 빈테이지와는 그 풍미를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과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또한, 살림살이 역시 새로운 것이 좋긴 하지만, 몇세대를 거쳐 사람의 손길이 닿고 사랑받고 소중하게 취급되어 온 고풍스러운 가구가 갖는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움과는 그 깊이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사실을 분별해 내는 문화로서 일본의 ZEN이 침투되어 들어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기도 하다.
●파괴된 상류 귀족문화를 살려야...
이에 비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경향에 있다.
패션도 차도 집도 가구도 사람들도 모두 신제품과 새로운 광고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한곳에 치중되어 인스턴트적인 미의 맹점에 사로잡혀 있는 경향이 많은 것이다.
단적인 예로서 아직까지 우리네 백화점이나 전문적인 카테고리내에서 전통이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마케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업계인들은 이 ‘전통’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도대체 구질구질한데다, 무엇보다도 노인냄새가 나서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ZEN만큼은 다르다. 너무나 첨단적이고 패셔너블한 아이템이라서 기가막힐 정도라는 평도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이런 편견의 배경에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등으로 생존의 조건이 거의 절대 절명으로 한정되어 있던,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끌어 나갈만한 상류 귀족 계층이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비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