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가친(燈火可親).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아주 좋다는 뜻입니다.
중국 한유(韓愈)의 시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가을 하늘.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고 있습니다. 뿌리에는 모두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회자되곤 했습니다만 요즘은 잘 등장하지 않는 듯 합니다. 하늘이 높은 줄 알고 말이 살찌는 그런 기운을 안다면 가히 명군(明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천고마비의 속뜻에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중국 군주들의 근심이 깔려 있습니다.
은나라 초기에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 진(秦), 한(漢)의 삼 왕조(三王朝)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약 2000년 동안 중국을 괴롭혀 왔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흉노족 때문이었음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흉노에게는 초원이 얼어붙는 긴 긴 겨울을 살아가야 할 양식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만 되면 목숨을 건 전쟁을 벌여 양식을 구했던 것입니다.
삶과 사람 사이의 시간적 제약, 그 주어진 시간동안 고통 받지 않음을 행복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물질적인 것에서 구한다면, 세상은 더욱 더 전쟁 같은 것으로 황폐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지배하려 했던 징기즈칸, 나폴레옹, 알렉산더 같은 영웅들이 긴 세월, 역사 속에서 보여준 교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미국이 세계 평화와 질서를 앞세워 중동을 유린하고, 아랍인들의 보복테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 어떤 사회건 화합과 반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힘의 균형이 어디로 쏠리는가에 따라 화합이, 때로는 반목이 승리한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승리는 자연의 힘, 진리, 진실, 지혜 같은 것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집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태양계의 조그마한 기운, 예를 들면 태풍·지진 등과 같은, 변화에도 세계를 제패한 듯 보이는 미국이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태양계의 조화된 기운에 잘 적응함을 나타냅니다. 서로 조화됨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는 <사랑>이 대표적입니다. 사랑을 통한 행복을 추구하려한 소설이 참으로 많지만, ‘등화가친’ 지절에 널리 읽혔던 소설 중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셀마 라겔뢰프의 ‘늪터집처녀 (호반의 각시로도 번역됨)’도 명작임에 틀림없습니다. ‘여자의 일생’은 가장 행복할 것으로 예상한, 객관적으로 너무나 잘 어울려, 하늘이 낸 한 쌍으로 보였던 젊은 남녀의 결혼이 비극으로 끝나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반면, ‘늪터집처녀’는 하녀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 희생적 정신을 통하여 자신을 버리려 함으로써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상상을 뛰어넘는 행복한 결실을 맺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셀마 라겔뢰프는 1909년 여성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작가입니다. 일생을 독신으로, 모든 정열을 조국과 문학,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얘기를 소설로 써 냄으로써 참사랑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위대한 행복은 물질이기보다 정신, 마음, 사랑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이 가을을 맞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