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대구경북 섬유산업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시장을 점령했었다.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을 전면에 내세운 산지 업계는 만들면 팔리는 최고 호황기를 누렸다.
15년이 지난 지금, 대구 산지는 1/3 토막 난 수출실적으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수출은 수량은 증가한 반면 평균 단가는 5% 이상 수직 하락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의 물량 및 저가 공세와 국내 수출기업들의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 맞물려 이같은 웃지 못할 기현상을 보여주고 말았다. 섬유산지 대표 품목군을 살펴보면 이같은 현상을 다소 이해할 만도 하다.
나일론직물, 화섬복합 및 교직물, 면직물, 폴리에스터직물, 화섬니트(ITY) 등이 산지 대표 품목군이다. 이 가운데 나일론 직물은 여전히 경쟁력을 보이며 선방하고 있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지만 연간 수출금액이 6000만불 내외로 그쳐 전체 수출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산지 수출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낮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면직물 또한 중국 수입 생지가 범람해 온 터라 이 품목 역시 산지 수출실적에서 진성품목으로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간판 품목들은 건재한가?”라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섬유인이 있을까? 역시 “글쎄요”다. 폴리에스터 직물과 ITY니트직물이 답할 차례다.
이들 2개 품목은 대구경북 섬유산지 수출실적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달리는 대표 수출 품목들이다. 각각 연간 누적 수출금액이 7억5000만불과 3억6000만불에 이른다. 산지 간판 수출 품목들이다. 하지만 지난해 평균 단가가 각각 3.3%, 4% 하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의 물량공세, 그리고 국내 수출기업 간의 출혈 경쟁에 따른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수출 단가를 회복하기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입을 모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섬유 생태계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힘을 발휘할 품목군은 나일론직물과 화섬복합직물군으로 압축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2개 품목 연간 수출 합계 금액은 1억5000만불 내외. 섬유산지 대구경북은 앞으로 1억5000만불로 살아 가야한다는 얘기다. 생태계 변화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할 수 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한 이유다.
지난 90년 초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된 이후 90년 중·후반경 급기야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면서 일본 폴리에스터직물 산지를 붕괴 수준으로 내몰았던 생태계 변화 전례를 되돌아볼 시점이다. 당시 일본의 붕괴 모습이 2015년 초 현재 국내 섬유산업이 처한 상황과 다르다고 말할 섬유인이 있을까?
생태계 변화 주기가 기가 막히게도 20년 사이클을 맞추고 있다. 당시 국내 섬유산업이 해왔던 역할을 이젠 거대 중국이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가 된 듯하다. 따라서 국내 섬유산업은 무엇으로 먹고 살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됐다. 향후 국내 섬유산업을 부흥시키고 미래 먹거리 섬유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업계는 업계대로, 학계와 섬유연구기관들도 나름대로 수년전부터 생태계를 이어갈 미래 먹거리 섬유 찾기에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섬유산지에 소재하고 있는 섬유, 염색, 패션을 잇는 3개 연구기관은 이같은 업계의 주력 품목군이 점차 생태계에서 도태될 조짐이 보이자 선진형 섬유산업으로의 진입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 사업추진을 위한 막바지 과정에 계류 중이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섬유개발과 물 없는 염색산업 기반구축, 그리고 휴먼 ICT 생태계 기반구축 등이다. 스트림별 연구기관들은 이들 대형 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수행, 국내 및 대구경북 섬유산지를 선진형으로 탈바꿈하는 한편 미래 먹거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 주력산업, 공정부품용 하이브리드섬유 사업화
그동안 대구경북 섬유는 일반 의류 용도 위주의 개발과 생산에 주력해 왔다. 다행히 생태계가 살아있었던 터여서 8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입히는 섬유는 효자산업으로 발전하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80년대 면직물이 주도하면서 섬유산지는 부흥이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이후 폴리에스터 강연감량직물이 바통을 이어받아 90년대를 화려하게 풍미했다. ITY싱글스판 니트 또한 2000년 초반부터 불붙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누빈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이같은 의류용 섬유는 이제는 후진형 섬유로 밀려나면서 중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후발국의 빠른 추격세로 대구경북 섬유산지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20년 전 우리가 일본의 영역이었던 폴리에스터 감량직물을 빼앗아 온 것과 같은 이치다. 생태계 변화에 따른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도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 및 연구기관과 학계는 섬유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의견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대구경북 섬유산지도 빠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사람에 입히는 섬유에서 이젠 산업을 입히는 섬유로 대전환을 하자는 프로젝트다.
이른바 공정부품용 하이브리드 섬유 사업화 사업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원장 문혜강)이 업계와 공동으로 2016년부터 5년간 총 사업비 2200억원(국비 1200억원, 지방비300억원, 민자 700억원)을 들여 대구경북 섬유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사업은 지난해 9월 예비타당성 기술평가에서 적합사업으로 선정된데 이어 11월에 예비타당성 대상사업으로 선정돼 사업 확정이 확실시 되고 있다. 마지막 관문으로 신년 상반기 중 기재부의 경제성 평가만 남겨놓고 있다. 추진사업으로 확정되면 2016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전개될 예정이다.
하이브리드 섬유는 기존의 고기능성 섬유와 수퍼섬유를 복합화한 섬유로 강도와 내열성, 내화학성, 내식성 등 일반 섬유류에서는 불가능한 기능들을 발휘하는 다기능성 산업융합 섬유로 풀이가 가능하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섬유는 산업전반에 거쳐 용도 전개가 가능한데다 선진형 섬유여서 국내 섬유산업이 반드시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절박함도 묻어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세계시장 조사에서 선진국의 경우, 산업용 섬유 소비 비중이 전체 대비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요 전개 사업은 핵심기술개발을 통해 산업생태계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이 기술을 활용해 철강, 수송, 전자, 통신, 환경, 에너지, 스포츠, 레저, 산업재료용 등의 부품을 개발해 상용화 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대구경북 섬유산지가 20년 이상 의류용 섬유에만 매달려 산업을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이 같은 하이브리드 섬유로 전환, 섬유 생태계도 지키고 섬유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계획대로 사업이 전개될 경우 향후 5년간 총 1조250억원의 수익을 창출, 의류용 섬유가득액의 50%를 커버한다는 구상이다.
■ 물없는 염색산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꾼다
세계적으로 물 부족현상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컬러(염색)산업은 1kg을 염색하는데 약 150L의 물을 소비하는 ‘물먹는 하마’로 낙인이 찍혀있다. 따라서 물을 절약하고 친환경 컬러산업으로 전환하기위해 물 없는 컬러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게 정부와 사업을 추진할 업계 및 다이텍연구원의 구상이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총 사업이 3980억원(국비2655억원, 지방비500억원, 민자 825억원)을 투자해 대구염색공단 입주업체를 중심으로 물 없는 염색공장을 목표로 혁신공정으로 전환시킨다는게 사업의 골자다. 이를 위해 물먹는 하마인 일반 염색공정을 대체할 비수계 염색기를 개발하고 물 없이도 염색, 가공할 수 있는 염·가공물질(초임계 유체용 물질)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단계별 추진 목표는 초임계 유체기술과 초임계 염료개발을 1단계 목표로 설정하고, 2단계에서 초임계 유체염색기와 DTP기계 및 염색공정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마지막 단계로는 유체염색과 염색단지조성을 통해 청정 컬러산업 단지화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초임계 유체기술은 기존의 물을 대신해 이산화탄소를 염료 입자의 이동 매체로 사용하고 염료입자 이송과 감압기술도 수행할 수 있다는 계획이다.
초임계 유체 염색 원천기술개발은 직물과 니트, 사염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특히 기능성 가공에서 DTP, 코팅까지 영역을 넓혀 염색산업을 친환경 물 없는 염색산업으로 전환하자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이 사업을 위해 다이텍 연구원은 2013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시작, 해외 전문가 초청 세미나 개최와 조사활동을 통해 2014년 5월 최종 기획 참여기관으로 선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이텍은 지난해 10월21일 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사업을 신청해 놨다. 공업용수 및 폐수를 80%까지 절감할 수 있는 물 없는 염색산업의 성공여부가 섬유산업 생태계를 비롯 선진형 청정 염색산업으로의 대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 휴먼 ICT 섬유패션 중소기업 생태계 기반 구축
스마트 기기로 ICT산업의 정보통신, 전자부품, 소프트웨어 스마트센서 등이 섬유, 안경 등의 제품과 유기적으로 융합된 제품을 개발한다는게 골자. 2013년 4월 ‘웨어러블 테크 산업육성을 위한 지역 기반 R&D기획’을 시작으로 연구개발과 성장기반 조성, 생태계 조성 등 총 3대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안전 웨어, 레저 웨어, 헬스케어 웨어, 에듀 웨어, 스마트홈 웨어 등 5대 유망제품 개발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 1500억원(국비 1052억, 지방비21억, 민자 238억원)을 들여 2015년부터 5년간 사업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연구원은 시제품 제작 공정장비와 패션ICT 시제품 제작 장비를 구축한데 이어 융합 공정장비와 인체 적용 평가장비 등을 구축해 상품화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목표로 하는 제품군으로는 전자회로 섬유와 바이오 의류, 빅 데이터 활용 가능한 의류, 섬유부품용 공정모듈 등이다.
아이보드, 아이매트 시대가 임박한 가운데 한국패션산업 연구원의 이 같은 프로젝트는 건강과 의료, 정보통신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어서 향후 섬유와 IT의 생태계 변화에 골격으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스마트 의류 개발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